기업판촉물 11월이 시작됐고 코끝에 와닿는 바람은 알싸하다. 가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리는 신호들이다. 트렌치코트 입고 한적한 은행나무길을 걷고,가을밤의 운치를 탐닉하고, 엽서 한 장도 띄워야 한다. 이 계절이 다 가기 전에 아낌없이 가을을 타고 놀아보자.
경주에서 은행나무랑 인생 사진 남기기
은행나무는 참 자애롭다. 단풍 절정기보다 이르게 혹은 늦게 찾아가도 아름다운 풍광을 선사하니 말이다. 조금 일찍 찾았다면 초록빛 머금은 싱그러운 자태로, 늦었다면 노란 카펫을 깔고 우리를 맞는다. 노란 은행잎이 나무 가득 차오른 절정기에 맞춰 가지 않아도 어떤 식으로든 가을의 절경을 즐길 수 있다.
전국 각지에 은행나무 명소가 많지만 ‘원픽’은 경주. 노거수, 숲, 길 등 은행나무의 다양한 변주곡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우선, 나만의 비밀 정원으로 아껴둔 정혜사지 십상층석탑이 있다. 몇해 전 현지인의 귀띔으로 알게 된 장소다. 불국사 삼층석탑(석가탑)과 다보탑, 분황사 모전석탑, 감은사지 동서 삼층석탑 같은 전국구 명성의 석탑에 비해 이름이 덜 알려진 곳이다. 그렇다고 가치가 덜하지는 않다. 통일신라시대에 건축된 탑은 13층이라는 보기 드문 층수와 독특한 양식을 지닌 귀한 국가유산이다.
국보 정혜사지 십상층석탑을 만나러 가는 길, 한적한 시골길로 접어든다. ‘뭐가 있을까’ 싶은 곳에 탑이 오뚝 서 있다. 겹겹산으로 둘러싸인 양지바른 터에는 어느 시절엔가는 공존했을 주변 전각들은 모두 사라지고 석탑 홀로 남았다. 긴 세월을 견뎌낸 탑은 쓸쓸해 보이기도, 고고해 보이기도 한다. 탑 주변을 감싼 은행나무들이 쓸쓸함은 덜어주고 고고함은 더해준다. 가을이면 노란빛 온기가 탑을 감싸 따스한 풍경을 연출한다. 혼자만 즐기고 싶다가도 또 혼자만 보기에는 아깝다.
이 풍경 하나로 여기까지 올 만하지만, 석탑 인근에 볼거리가 더 있어 흐뭇하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한국의 서원’에 속하는 옥산서원이 차로 1분 거리다. 조선시대 성리학자 회재 이언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이 서원은 단아하다. 강학 공간인 구인당을 중심으로 유생들이 기거하던 동재와 서재가 자리한다. 전형적인 서원 구조인데 중층으로 된 문루 무변루가 이색적이다. 서원 앞을 흐르는 청정 계곡은 여름 피서지로, 가을 단풍 명소로도 인기다. 울긋불긋 단풍 물드는 계곡 위로 작은 외나무다리가 놓여 인생 사진 남기기에도 좋다. 계곡 숲길 따라 독락당까지 산책을 이어가자. 10~15분 정도 사부작사부작 걸어가면 이언적이 거처하던 독락당에 이른다. 계곡과 맞닿은 건축물이 남다른 운치를 자아내는데, 담장에 나무살을 대어 만든 작은 창이 인상적이다. 창을 통해 바라보는 계곡 경치도, 계곡에서 바라보는 독락당 풍광도 모두 한 폭의 그림이다.
은행나무로 유명한 서원은 따로 있다. 바로 경주시 강동면 청수골에 있는 운곡서원. 안동 권씨 시조이자 고려 개국공신인 권행을 배향하는 서원으로, 수백년 동안 서원 앞을 지켜온 노거수 은행나무가 명물이다. 수령 300년이 넘은 거목은 수많은 가지마다 잎이 빼곡하게 달려 있다. 나무 한 그루지만 은행나무숲 못지않은 풍성함을 뽐낸다. 덕분에 연중 한적하던 서원은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드는 이맘때가 되면 북적북적해진다.
운곡서원 은행나무에 비해 한참 어린 나무들이 모여 숲을 이룬 도리마을 은행나무숲도 놓칠 수 없다. 경주의 외진 산간 동네였던 도리마을에 조성한 은행나무숲이 몇년 전부터 입소문을 타면서 경주 가을 ‘핫플’로 자리 잡았다. 은행나무가 빽빽한 숲은 가을이면 사방이 온통 노란 물결이다. 노란 숲속을 걷고 사진 찍으며 말랑말랑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편의시설이랄 게 별로 없지만 단풍 시기에는 주민들이 먹거리 장터를 열어 재미를 더한다.
은행나무숲만 있으랴. 은행나무길도 있다. 신라 삼국통일 업적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통일전 앞 직선 대로를 따라 은행나무 행렬이 길게 이어진다. 노란빛 가득 머금은 은행나무를 양옆에 끼고 걷는 기분이 꽤 근사하다. 가을 드라이브 코스로도 제격이다. 은행나무길을 걸은 후에는 통일전에 올라보자. 쭉 뻗은 은행나무길을 한눈에 담아볼 수 있는 전망 포인트다.
남원에서 달빛 야행 즐기기
해가 일찍 자리를 뜨는 계절이다. 그만큼 달빛 아래 노닐 수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너무 요란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스산하지도 않게 달빛 기행을 즐기고 싶은 가을날이면 남원 광한루원을 찾는다. 우리나라 제일의 전통 누원으로 꼽히는 광한루원에는 신선의 세계관과 천상의 우주관이 담겼다. 한국 대표 누각인 광한루를 중심으로 하늘나라 은하수를 상징하는 연못을 만들고, 연못 위에는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오작교를 설치했다. 또 연못 가운데에는 신선이 산다는 전설의 삼신산을 상징적으로 연출했다. 어느 하나 허투루 지은 공간이 없다. 여기에 고전 <춘향전> 속 춘향과 몽룡의 이야기가 더해진다. <옷소매 붉은 끝동> <철인왕후> <연모> 같은 많은 로맨스 사극 드라마가 이곳을 촬영지로 선택한 건 지극히 당연해 보인다.
광한루원은 예나 지금이나 공간의 목적성은 분명하다. 자연과 어우러져 쉬어가는 것. 발길 닿는 대로 걸으며 힐링하기 좋다. 꽃과 나무가 가득해 사계절 다른 풍광을 연출하고 야간 조명이 드리워져 밤낮의 분위기가 다르다. 지금 광한루원에 가면 낮에는 단풍을, 밤에는 야경을 즐길 수 있어 일거양득. 달빛 아래 은은한 광한루와 완월정의 자태가 곱디곱다.
광한루원을 나와 강 건너편의 히든브릿지로 향한다. 엽서 카페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소통을 주제로 꾸민 복합문화공간이다. ‘감춰두었던 진심이 서로 닿을 수 있도록 연결해 주는 공간’을 지향한다. 1층에 들어서면 한 면을 가득 채운 엽서 전시 코너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각양각색의 엽서를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2층은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특별한 체험공간으로 구성했다. 1층에서 고른 엽서로 가족이나 친구에게 그동안 하지 못했던 솔직한 마음을 담아 전달해보자. 연필 잡을 일이 별로 없는 요즘, 손에 힘을 주고 꾹꾹 눌러 쓴 글자에는 디지털 기기로 톡톡 두드린 텍스트보다 마음이 깊이 담긴다. 이름 모를 누군가에게 엽서를 남겨도 된다. 지금의 내 감정과 어울리는 향수를 골라 엽서에 뿌리면 마음을 더욱 풍부하게 담아낼 수 있다. 마음에 드는 향의 핸드크림을 골라 서로의 손에 발라주며 향기와 체온을 느껴보는 체험, 두 개의 헤드셋으로 같은 음악을 들으며 서로 교감하는 체험 등 오감으로 소통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다. 혼자여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여도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정선에서 은빛 억새 물결에 스며들기
지금 강원 정선군 민둥산은 억새가 한창이다. 억새는 단풍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바람 따라 일렁이고 햇빛 아래 반짝이며 오묘한 매력을 발산한다. 보면 볼수록 빠져드는 마력을 가졌다. 그래서 한 번 은빛 억새 물결을 마주하면 그 풍경이 자꾸 눈에 아른거려 해마다 가을 산으로 향하게 된다.
산행 초보자의 선택은 주로 민둥산. 전국 대표 억새 명소로 꼽히는 민둥산은 등산 코스가 그리 험하지 않아 초보자도 오를 만하다. 그렇다고 만만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편도 1시간30분에서 2시간 코스로, 힘든 오르막 구간과 미끄러운 흙길 구간도 있으니 마음의 준비는 해야 한다.
대부분 증산초교 쪽을 들머리로 산행을 시작한다. 산행 초반에는 숲이 우거졌다. ‘나무가 없는 산’을 뜻하는 민둥산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다. 7~8부 능선 즈음에 이르렀을까. 드디어 민둥산이 참모습을 드러낸다. 나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이곳부터는 억새의 땅이다. 산 정상부를 가득 채운 억새들이 가을바람 타고 자유로이 하늘거린다. 지켜보는 이의 마음도 덩달아 자유로워진다.
‘민둥산, 해발 1119m’라고 적힌 정상 표지석 앞에서 인증 사진을 남기고 그냥 하산해서는 안 된다. 민둥산의 또 다른 인증 사진 포인트로 떠오른 돌리네를 방문해야 한다. 돌리네는 석회암으로 이뤄진 카르스트 지형에서 관찰되는 원형 또는 타원형의 움푹 파인 땅을 일컫는데, 민둥산 돌리네가 ‘미니 백록담’이라 불리며 MZ세대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산 정상에서 만나는 돌리네는 사계절 신비로운 풍경을 선사하는데, 참고로 초록빛 머금은 여름 풍경을 최고로 치긴 한다.
소설가 이외수(1946∼2022)의 부인 전영자씨가 지난 7일 별세했다.
8일 유족은 전씨가 전날 오전 10시쯤 강원도 춘천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전했다. 향년 72세.
강원도 양구에서 태어난 고인은 미스 강원 출신으로 전해졌다. 이씨가 춘천에서 다방 DJ로 생계를 꾸릴 때 손님으로 갔다가 이씨의 구혼을 받아들여 1976년 11월 결혼했다.
2006년 EBS TV ‘다큐 여자’에서 남편이 책상 앞에서 원고지를 펴놓고 사투를 벌이는 동안 쌀을 빌리러 다녀야 했고 현실과 동떨어져 사는 것 같은 남편이 싫어서 몇 차례나 보따리를 싸기도 했다고 고백했다. 이 프로그램에서 고인은 “글을 쓰며 평생을 살아야 하는 것이 남편의 천직이라면 작가 이외수의 아내로 살아가야 하는 것 역시 나의 천직이었는지도 모른다”고 회고했다.
2018년 말 별거에 들어갔고, 2019년 ‘졸혼’(卒婚)을 선언했다. 전씨는 2019년 JTBC ‘막나가쇼’에서 ‘졸혼’을 주제로 방송인 김구라씨와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전씨는 졸혼 결심 이유에 대해 “신장에 문제가 생겼다는 진단을 받았고, 몸이 그렇게 되니 귀찮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그동안은) 거의 붙어다니다시피 했다, 하다못해 여기서 저길 가더라도 (내가) 있어야 된다, 그거에 질리겠더라, 한번이라도 떨어져 있자(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전씨의 설명에 따르면, ‘서로 떨어져 살고 싶다’는 바람을 전하자 이외수씨는 ‘이혼은 안되고 졸혼을 하자’고 제안했다. 전씨는 “응, 알았어, 그거해”하고 받아들이면서 ‘졸혼’이 이뤄졌다.
하지만 2020년 3월 이씨가 쓰러지자 졸혼 종료를 선언했고 남편 곁을 지키며 병간호했다. 2022년 이씨가 세상을 떠난 뒤에는 춘천에서 혼자 생활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들 이한얼씨는 “평생의 반려자가 떠난 뒤 많이 외로워하셨다”고 말했다.
유족은 2남(이한얼(작가)·이진얼)과 며느리 설은영(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작가)·김경미씨 등이 있다. 빈소는 춘천 호반병원 장례식장 특1호실, 발인 10일 오전 6시30분.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종묘 근처에 초고층 건물을 세우겠다는 서울시의 개발 계획에 대해 “해괴망측한 일”이라며 “장관으로서 취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강구해 우리 문화유산을 지키는 일에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최 장관과 허민 국가유산청장은 7일 서울 종묘를 찾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종묘는 조선 왕실의 위패가 모셔진 신성한 유산이며, 우리나라 유네스코 세계유산 1호의 상징적 가치를 가진 곳으로, 문화강국 자부심의 원천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가치가 훼손될 수 있는 현 상황이 매우 우려스럽다”며 이같이 말했다. 최 장관은 서울시의 종묘 인근 개발 계획에 대해 “이것이 바로 1960~70년대식 마구잡이 난개발 행정 아닌가. 문화강국의 자부심이 무너지는 이런 계획은 반드시 막아야한다”고 말했다.
최 장관의 작심 발언은 대법원 판결로 서울시가 세운4구역 재정비사업을 재추진하려 하자 나온 것이다. 서울시는 지난달 30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종묘’ 맞은편에 있는 세운4구역에서 건물 최고 높이를 2배 이상으로 늘려 최고 142m 높이의 초고층 빌딩이 들어설 수 있도록 하는 재정비계획을 일방적으로 고시했다.
최 장관은 또 특검 수사에서 김건희 여사가 지난해 9월 종묘 망묘루에서 비공개 차담회를 가진 사실까지 거론하며 서울시를 강력 비판했다. 최 장관은 “권력을 가졌다고 마치 자기 안방처럼 마구 드나들며 어좌에 앉고 차담회 열고,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 처참하게 능욕을 당한 지가 바로 엊그제”라며 “권한을 조금 가졌다고 해서,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겠다는 서울시의 발상과 입장을 저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우리 소중한 문화유산이 계속해서 이런 취급을 당해서야 되겠나”라고 말했다.
그는 종묘 가치 훼손을 막기 위해 “‘문화유산의 보존 및 활용에 관한 법률’, ‘세계유산의 보존ㆍ관리 및 활용에 관한 특별법’등 관련 법령을 개정하고, 필요할 경우 새 법령 제정도 추진하겠다”며 “허 청장도 법령의 제정, 개정을 포함해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신속히 검토해 보고해 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허 청장은 “대체 불가한 가치를 지닌 종묘가 지금 심각한 위험에 처해 있다”며 “위험을 자초한 것은 유산을 보호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는 서울시”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 사안이 “높이냐, 그늘이냐의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서 “초고층 건물들이 세계유산 종묘를 에워싼 채 발밑에 두고 내려다보는 구도를 상상해보라”며 “모든 방법을 강구해 세계유산 지위를 지키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문체부과 국가유산청은 세운4구역 높이 변경과 관련한 대응책을 검토 중이다. 국가유산청은 서울시의 고시 내용과 현재 상황을 유네스코 측과도 공유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고고학회도 이날 긴급 입장문을 내고 “종묘 앞 하늘과 시야를 가르는 고층 건물을 기정사실로 하려는 시도는 우리의 문화적 기억을 잘라내는 일”이라며 “문화유산의 가치를 훼손하는 어떠한 행위도 반대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서울시는 종묘 근처 세운4구역 재정비사업을 추진하며 문체부와 갈등을 빚었다. 문화유산법(옛 문화재보호법)상 시·도지사는 지정문화유산의 역사문화환경 보호를 위해 국가유산청장과 협의해 조례로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을 정해야 한다. 이에 따라 서울시 조례는 보존지역 범위를 ‘국가지정유산의 외곽경계로부터 100ｍ 이내’로 정했다. 그런데 국민의힘이 의석의 3분의2 이상을 장악한 서울시 의회는 2023년 9월 해당 조항이 ‘상위법인 문화재보호법보다 포괄적이고 과도한 규제’라면서 이를 삭제하는 개정안을 의결했다.
종묘는 조선과 대한제국 역대 왕과 왕비, 황제와 황후의 신주를 모신 사당으로, 1995년 석굴암·불국사, 해인사 장경판전과 함께 한국의 첫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유네스코는 올해 4월 서울시에 재정비사업이 종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전체 계획에 대한 유산영향평가(HIA)를 받으라고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문화계에선 종묘의 경관을 초고층 건물이 해치면 세계유산 지위도 위험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실제 영국의 ‘리버풀, 해양 무역도시’는 2004년 세계유산에 등재됐으나 주변 대규모 개발 사업이 문제가 되며 2012년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이 됐고 2021년에는 세계유산 지위를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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