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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해력훈련 [역사와 현실]승육(昇六)의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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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황준영 날짜26-01-18 03:33 조회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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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해력훈련 9급에서 1급까지인 행정 공무원 직급에서 모든 승진이 기쁘지 않을 이유가 없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의미가 큰 승진은 5급이 아닐까 싶다. 이른바 ‘사무관’으로의 승진은 실무자에서 관리자로 진입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직급명에도 ‘관’이 붙고, 기초지자체의 경우에는 과장으로 보임될 수 있다. 중앙이나 광역지자체에서도 팀장급이니 권한과 책임이 큰 중견공무원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5급에 바로 임용되는 시험은 ‘고시’라 불릴 정도로 어렵고, 9급부터 시작하는 공무원의 경우 평생을 통해 도달할 수 있는 마지막 직급이 5급인 이들도 많다.
조선의 관직은 9품에서 1품까지, 이를 다시 정(正)과 종(從)으로 나누어 총 18개의 품계가 있었다. 당연히 품계가 높아질수록 승진의 기쁨도 크겠지만, 공무원 5급과 유사한 의미를 갖는 품계는 6품이 아닐까 싶다. 1712년 음력 11월26일, 엄경수는 공무원 인사위원회에 해당하는 도목정사를 통해 정6품인 성균관 전적으로 승진했다. 1705년 대과에 급제한 후, 7년 만의 경사였다. 함께 합격한 동료들에 비해 꽤나 늦은 승진이었지만, 6품직으로의 승진은 이전 모든 억울함을 상쇄할 정도로 기쁜 일이었다.
엄경수는 유난히 승진운이 없었다. 그 역시 대과 급제 후 승문원에서 권지로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권지는 지금의 ‘시보’ 정도 개념이니, 실직은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1년 정도 권지 생활을 하면 실직에 임명되는 게 관례였지만, 선임자들의 인사 적체가 심해 엄경수는 권지 생활만 3년을 했다. 그러다가 1708년 여름 드디어 권지 생활을 끝내고 실직에 오를 차례가 되었지만, 선임 관리 중 한 명이 엄경수가 권지 생활 중 고향에 내려가 있었다는 사실을 문제 삼아 이를 반대했다. 시보의 설움이었다.
이로 인해 그해 겨울이 되어서야 겨우 품계에 있는 실직에 임명되었다. 다행히 실직에 임명된 이후, 여러 관서를 옮기면서 빠르게 승진이 이루어졌고, 드디어 6품직 승진을 앞두게 되었다. 그러나 도목정사 과정에서 선임 가운데 한 명이 산관직(품계만 있고 직책이 없는 자리)에 있다가 복귀하면서 엄경수의 자리를 차지해 버렸다. 대과 합격자들이라면 비교적 쉽게 넘는 6품직 승진을 그는 또 6개월 기다려야 했다. 그런데 그해 겨울 도목정사는 이듬해 봄으로 연기되었고, 그 이듬해 봄에는 왕의 건강 문제로 도목정사가 시행되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엄경수는 부친상을 당했고, 결국 삼년상을 치르기 위해 사직해야 했다. 엄경수에게 6품의 문턱은 높기만 했다.
만 2년이 조금 넘는 기간의 삼년상을 마치고 엄경수는 관례에 따라 이전 직책으로 복귀했다. 이러한 기다림 끝에 1712년 겨울 엄경수는 드디어 정6품직인 성균관 전적으로 승진했다. 말 그대로 ‘6품으로의 승진’인 ‘승육(昇六)’에 도달하면서, 엄경수는 참상관(參上官)이 되었다. 이제 그는 조정의 중견 관료로 인정받았고, 지방관으로 나갈 수 있는 자격도 갖추게 되었다. 공식적으로 말 타고 출근할 수 있게 되었으며, 반역이나 불효 등과 같은 중죄가 아니면 직첩도 빼앗기지 않게 되었다. 1713년 새해는 그야말로 엄경수의 해였다.(출전: 엄경수, <부재일기>)
역사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엄경수의 승진운은 많은 직장인들로 하여금 자신의 처지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갖게 했을 것이다. 고위 공무원도 아니고 당상관으로의 승진도 아닌, 5급, 그리고 6품직으로의 승진이 일상인들의 정서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역사는 당상관으로 승진한 사람들을 기억하지만, 일상에는 6품직으로의 승진을 위해 목매는 이들이 더 많았다. 장관이나 차관이 되는 것보다, 5급 승진에 목매는 이들이 많은 우리네 일상처럼 말이다. 1713년 새해가 그런 엄경수의 해였던 것처럼, 2026년 역시 엄경수처럼 살아가는 모든 일상인들의 해이기를 바라 본다.
“그래, 이런 게 영화지.” 눈 오는 날 넘어지면서 병원에 가서 깁스를 하고 온 날이었다. 갑자기 움직일 수 없는 다리와 함께 뭘 해야 할지 몰라서 침대에 누워 넷플릭스 영화 <기차의 꿈>을 봤다. 모처럼 영화다운 영화를 보는 즐거움에 흠뻑 취해 나만의 ‘깁스 홀리데이’를 자축하고 싶은 마음마저 들게 하는 영화였다. 게다가 영화가 끝나면 이런 메시지가 우주에서 온 희미한 교신 신호처럼 마음에 남는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혹시 이런 게 유령 같은 양자 중첩인가? 이제 막 카를로 로벨리로부터 시작되는 상호 연결적 예술여행을 시작해 보겠다고 선언했는데, 그것도 아주 멀리서 아무도 들어 주는 사람 없을 것 같은 조용한 산골 마을에서 혼자 선언했는데 그 선언에 호응하는 누군가가 혹시 내 발목에 먼저 살짝 금을 내고 그 다음 이 영화를 내게 보내준 건가? 그럴 리 없겠지만 참 신기했다.
영화의 주인공은 떠돌이 벌목꾼이다. 이 숲 저 숲 돌아다니며 나무를 자르거나 철도를 깔기 위해 나무를 옮기는 일을 하는 사람. 기차를 타고 이동하는 일이 많고 집을 비우는 일도 많은 사람. 그리고 그 직업 때문에 겪게 되는 상실과 슬픔. 그리고 모든 걸 다 견디어낸 주인공이 죽기 전에 자신의 살아온 생애로 깨닫게 되는 이 세계의 진실. 그냥 저절로 알게 되는, 그게 자연의 힘이고 예술의 힘이지 싶은 것들. 덕분에 이제 나무 한 그루도 허투루 보지 않게 된 나는 나무와 기차에 대해, 그리고 그들이 함께 꾸었을 꿈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인상파 화가들만큼 나무를 좋아하는 이들이 없었던 것 같은데 그들의 그림 속에서 나무는 그저 초록색과 갈색으로 그려지는 풍경의 일부일 뿐이다. 정확히 그들은 나무가 아니라 나무에 부딪혀 산산조각 난 빛의 잔해들을 그렸다. 그 이상의 보이지 않는 본질을 그려보려 했던 세잔 같은 화가가 가장 존경받는 거장의 반열에 올랐지만 그런 세잔조차도 다른 화가들과 마찬가지로 빛이 닿지 않는 나무의 뿌리는 늘 생략했다.
그런데 이 영화 <기차의 꿈>은 달랐다. 나무가 어둠 속에서 지하의 수로를 찾아 뿌리를 뻗는 고투는, 인간이 산을 깎고 강을 가로질러 철길을 놓는 고투와 닮아 있다는 걸 알게 했다.
그뿐인가? 철길 아래 눕혀진 침목들은 한때 숲이었던 기억을 짓누르며 기차라는 현실의 무게를 받아내는 거다.
시간의 방향에서 생각해보는 것도 재밌다. 살아생전 수직으로 살던 나무는 죽어 선로 아래 침목이 됨으로써 비로소 대지에 수평으로 눕는 건지 모른다. 한강 작가 스타일로 표현하면 죽은 나무가 살아 있는 기차의 속도를 견디고 있는 셈인데, 기차는 그 덕분에 이 나무의 사후(死後) 위를 빠르게 달릴 수 있다.
그러한 기묘한 공생 관계 속에서 어쩌면 꿈이 이뤄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 그렇게 평생 한 지점에 박힌 채 이동을 꿈꿨을 나무의 갈망을, 인간이 만든 기차라는 ‘금속의 짐승’이 대신 이뤄주는 거다!
숲에서 나무를 베는 벌목꾼 이야기가 어떻게 <기차의 꿈>이라는 소설이 되고, 다시 영화가 됐는지 생각해 보는 일은 내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미심장한 사건이 되었다. 그것은 미술관에서 몇 시간씩 줄을 서서 마주한 인상파 화가의 그림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건넸다. 생각은 더 깊어졌고,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 나가는 수면의 흐름 속에서 감동의 파동도 한층 깊어지는 느낌이었다.
나는 이 모든 생각의 끝에서 요제프 보이스가 카셀의 거리마다 심어놓은 7000그루의 떡갈나무를 떠올린다. 그는 나무 곁에 차가운 현무암 비석을 나란히 세우고 그것을 ‘사회적 조각’이라 불렀다. 나무 한 그루를 심는 행위가 세상의 모든 단절된 것들을 다시 잇는 치유의 시작이 될 수 있다고 믿은 것이다.
결국 예술이란, 보이지 않는 뿌리를 상상하는 일이며, 끊어진 선로를 마음속에서 잇는 작업인 동시에, 보통 사람들이 자기 삶의 공간 속에서 나무처럼 자라는 꿈들을 계속 지켜낼 수 있도록 누군가 제안하고 연결하고 실행하는 일이구나 생각한다. 이제 곧 이 답답한 석고 껍질을 벗어던지는 날이 올 텐데, 그날이 오면 일단 기차부터 타고 싶다. 기차 속에서 창밖으로 멀어지는 나무들을 보고 싶다. 그러다 어느 역에서 내리게 되겠지. 거기가 어디가 될지는 아직은 나도 모른다.
한국인이 미국에서 운전대를 잡으면 꼭 주의하라는 말이 하나 있다. “교통사고가 나더라도 먼저 I’m sorry라고 말하지 말라.” 상식적으로 죄송하다는 말이 먼저 나갈 수 있지만 미국에서 ‘I’m sorry’는 법적 책임을 인정하는 언사로 해석될 수 있다는 조언이다. 위기 상황에선 사과보다 법적 방어를 우선시하는 문화라는 뜻이다.
지난해 11월18일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 사태가 알려진 뒤 지난 두 달간 보인 태도가 딱 그렇다. 잘못했다고 먼저 고개 숙이지 않는다. 정보 유출을 ‘노출’이라고 표현한 점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말 국회에서 열린 청문회는 그 절정이었다. ‘법적으로 따져보라’는 쿠팡 태도는 무성의했다. 먼저 쿠팡과 법적 소송이나 행정 처분으로 맞서본 정부 측 인사들은 일찌감치 쿠팡의 이 같은 태도를 경험해봤다고 한다. 쿠팡은, 김범석은, 철저히 미국식 법무 중심의 위기 대응을 하고 있다. 이 방식은 쉽게 바뀔 리 없다. 그렇다면 대응 방식을 바꿔야 하는 건 우리다.
플랫폼 기업 힘 갈수록 커가는데독과점 등 통제할 국내 제도 미흡‘탈팡’도 대체재가 확실해야 효과정부가 법 기반 확실히 다져야
쿠팡 사태는 역설적으로 한국 사회의 민낯을 드러낸다. 한국인 3400만명 개인정보 유출이라는 집단 피해가 발생해도 소송에 참여한 일부만 어렵게 소송을 벌여야 하는 구조다. 집단소송 제도가 필요한 이유다. 피해 사실에 대한 입증 책임 역시 정보 접근성이 떨어지는 개인이 아니라 기업이 부담하도록 서둘러 바꿔야 한다.
플랫폼 기업의 힘은 커졌으나 이를 통제할 제도는 한참 뒤처져 있다. 지난 한 해 쿠팡 물류센터와 배송 현장에서 사망한 노동자만 8명이다. 특정 기업의 특정 현장에서 이처럼 반복적으로 사망사고가 발생했다면 우연이 아니다. 구조적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새벽배송 기사는 지금도 노동자인지 개인사업자인지 불분명하다. 배송 시간과 물량을 플랫폼이 통제하고 있어 근로자로 인정될 수도 있다. 법적 지위가 명확하지 않은 셈이다. 플랫폼 노동자의 지위와 노동환경을 둘러싼 제도적 보완이 필요한 이유다.
독과점 지위를 누리는 플랫폼 사업자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최혜대우 요구 등을 규제하는 장치도 미흡하다. 현행 공정거래법으로는 시장지배자 위치에 있는 온라인 플랫폼을 명확하게 규율하기가 쉽지 않고, 과징금 수위도 낮은 편이다. 온라인 플랫폼 독과점 규제법의 필요성을 말해준다.
사실 쿠팡에 가장 단기적 타격을 줄 수 있는 건 이른바 ‘탈팡’이다. 쿠팡 불매운동은 벌써 세번째다. 2019년 쿠팡이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이 주도하는 비전펀드 투자로 성장한 회사라는 이유로 일본 제품 불매운동 차원에서 대상이 됐다. 2021년 경기 이천 물류센터 화재 당시 소방관이 숨진 지 5시간 만에 김범석이 한국 쿠팡의 모든 직위에서 물러난다고 알린 때도 불매운동이 확산됐다. 당시 회사는 이전에 결정된 사항이라고 했으나 사망사고가 일어났는데도 사임 소식을 전했다는 점에서 논란이 컸다.
불매운동이 성공하려면 대체재가 확실해야 한다. 남양유업 불매운동이 전국적으로 번지고 매출 감소라는 타격을 줄 수 있었던 이유는 진열대에서 대체품을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쿠팡이 6조원 넘게 들여 구축한 물류센터는 이제 사회 인프라가 됐다는 말까지 나온다. 국내 대형 유통업체가 쿠팡만 한 배송 물류망을 갖추지 못하고 심야영업을 못한다는 현실을 고려하면 ‘탈팡’이 얼마나 이어질지, 얼마나 타격을 줄지 냉정히 말해 물음표가 찍힌다.
결국 정부 역할이 중요하다. 지난해 12월31일 정부는 밤늦게 이례적인 보도자료를 하나 냈다. 국회 6개 상임위원회의 합동 쿠팡 청문회 직후였다. 국무조정실 등 12개 부처가 참여한 쿠팡 사태 범정부 TF는 “(쿠팡 위법행위를) 절대 좌시하지 않고 법적으로 가능한 모든 방안을 강구해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12곳이나 되는 정부 부처가 한 기업을 향해 강도 높은 경고 메시지를 내는 일은 극히 드물다. 의지를 다지는 건 환영하지만 엄포에 그칠까 우려된다. 치밀하게 준비해 실질적 제재를 가하고, 재발을 막을 필요한 법적·제도적 기반까지 다져야 한다.
혹여 이번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할 수도 있다. 우리는 김범석과 쿠팡, 또 다른 ‘쿠팡’을 언제든 다시 마주할 수 있다. 그때 필요한 건 의지와 호소가 아닌 법과 제도라는 무기다. 지금은 다음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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