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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 포지션’ 국내파, 스리백 실험에 주가 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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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황준영 날짜25-07-10 17:14 조회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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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북중미 월드컵을 향한 첫 실험 무대에서 홍명보호의 스리백 전술 시도와 함께 ‘멀티 포지션’ 자원들의 가치가 급부상하고 있다.
홍명보 축구대표팀 감독은 지난 7일 경기 용인 미르스타디움에서 열린 2025 EAFF E-1 챔피언십(동아시안컵) 중국전을 3-0으로 승리한 뒤 “이것이 플랜A가 될 수도 있고 플랜B가 될 수도 있다”며 이날 경기와 같이 스리백 전술을 계속 시험해 보겠다는 뜻을 밝혔다. 또 “1년 후 월드컵을 대비해 선수들이 얼마나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느냐, 무더운 날씨에서 얼마만큼 뛸 수 있느냐가 전술이나 전략보다 훨씬 중요한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3-4-3 포메이션으로 나선 이날 중국전에서 가장 눈에 띈 선수는 이동경(29·김천)이다. 오른쪽 날개 공격수로 나섰지만, 전통적인 윙어와는 다른 임무를 수행했다. 측면으로 벌려 스트라이커나 다른 2선 자원들의 침투 공간을 확보하기보다는 스트라이커 옆에 붙어 윙백과의 공격 작업을 지원하는 플레이메이커 역할에 집중했다. 날카로운 킥력으로 직접 득점도 올렸다.
박진섭(30·전북)은 센터백 3명 중 중앙에서 공격 시 빌드업의 시발점 역할을 하고, 수비 시에는 과감하게 앞으로 튀어나가 위험 지역으로의 볼 투입을 사전 차단하며 상대 공격을 무력화시켰다. 전북에서 주로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는 박진섭은 센터백으로도 완벽한 적응력을 보여주며 홍명보 감독의 전술적 다양성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중국전에서 오른쪽 센터백으로 나선 박승욱(26·포항) 또한 풀백도 소화하는 멀티 수비자원으로서 전반 1~2차례 과감한 오버래핑으로 측면 공간에서 수적 우위를 제공했다. 후반 12분에는 코너킥 상황에서 헤더로 김주성의 추가골을 도와 세트피스에서도 위력을 발휘했다.
국내파들이 스리백 시스템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배경에는 해외파들과는 다른 경쟁 요소가 있다. 특히 수비수의 경우 해외파들은 각 포지션 스페셜리스트로 활약하지만, K리그 선수들은 여러 포지션을 소화하며 팀 전술에 유연하게 적응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북중미의 무더위 속에서 경기 중 전술 변화로 인한 교체 필요시 즉시 투입 가능한 멀티 자원들은 활용도가 더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김 해설위원은 “본선에 가면 우리보다 강한 팀들을 만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수비 숫자를 늘리는 스리백을 반드시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수비형 미드필더와 센터백까지 소화하는 멀티 수비 자원의 가치는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평가다. 대표팀은 포백과 스리백을 상황에 따라 오가는 전술적 유연성을 확보하면서도 멀티 포지션이 가능한 국내파들을 통해 해외파 위주 편성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게 됐다.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일명 ‘미아리텍사스촌’ 골목 안쪽은 폭염 속에서도 서늘했다. 성매매 영업용 쪽방들이 벌집처럼 늘어선 탓에 안그래도 좁은 골목에는 볕조차 잘 들지 않았다.
이곳에서 길게는 40년 이상 성매매 여성들의 ‘이모(포주)’ 역할을 한 70대 업주 대여섯이 지난 9일 오전 텍사스촌 골목 모퉁이 한 켠에 모여 앉았다. 이날 성매매업소 한 곳에 대한 행정대집행 차 동원된 100여 명의 용역업체 직원들이 주변 골목 전체를 막아섰다.
“내 가게가 저기에 있는데 왜 막아서냐” “고양이 밥 주러 가야한다”
골목으로 들어서는 길목마다 용역직원과 실랑이 하는 업주들과 성매매여성들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서울 북부지법 소속 집행관들의 참관 아래 오전 10시부터 강제집행이 시작됐다. 문짝부터 때려부수는 소리가 요란하다. 저항은 없었다. 성매매여성들을 지원했던 전국철거민연합 일부 관계자들이 현장에 잠시 들렀다. 본격적으로 철거가 진행되자 이내 자리를 떴다.
철거를 지켜보던 업주들은 “(여기를 나가는 문제는) 이미 끝난 일”이라며 가게에서 갖고 나온 냉커피를 마셨다.
“이모, 오늘 무슨 일 있어?”
“오늘 저기 OOO(업소명) 강제집행한대. 뭐하러 버티나 몰라”
퇴근하려고 가게를 나선 성매매여성들이 묻자 업주들이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한 업주는 “(OOO 가게 주인에게) ‘도와줄까’라고 물어보니, ‘됐어. 그냥 치우게 놔둬’라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삼삼오오 모여있던 업주들은 “그냥 합의금 받지, 강제철거하면 철거비 1000만원을 물어줘야 하는데 왜 버티나 몰라”라며 혀를 찼다. 또다른 업주가 “철거비만 내? 보관료도 우리보고 내라던데?”라고 말을 보탰다.
집행이 시작된 후에야 업소 주인이 얼굴을 내비쳤다. 용역직원들에게 막혀 가게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지하 1층~지상 2층 규모의 업소 안에서 트럭 10대 분량의 매트리스와 전신거울, 서랍장, 옷걸이 등이 쏟아져 나왔다. 수십 년간 묵었던 짐들에 스며든 악취가 먼지에 뒤섞여 골목을 가득 채웠다.
“어휴, 곰팡내” “어휴, 지린내”
뒷골목에 앉아있던 업주들이 코를 틀어막았다. 폭염에 악취까지 뒤집어쓴 일부 용역직원들은 헛구역질을 했다. 집행은 1시간 40분만인 오전 11시 40분쯤 마무리됐다.
미아리텍사스촌은 2000년대 초 한때 400여 개의 성매매업소가 자리하며 성황을 이뤘다. 지금은 약 70여개 업소만 남은 상태다. 그래도 오후 10시부터 익일 오후 2시까지 여전히 영업은 하고 있다.
업주들은 “(남은 70여개 중) 매일 문을 열고 장사하는 가게는 그 절반도 되지 않는다”고 했다. 남은 업소들 중 약 40%는 신월곡 1구역 재개발 조합과 합의를 마쳐 다음달 중 가게를 비울 예정이다. 합의금은 이사비 등으로 업소당 5000만원 안팎을 받기로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업주들은 “합의는 했지만 완전 퇴거가 이뤄질 때까지는 영업을 이어갈 생각”이라고 했다.
신월곡1구역 재개발 조합은 이날 골목 곳곳에 폐쇄회로(CC)TV 설치작업도 시작했다. 방화(화재) 예방목적이라고 했다. 업주들은 “무슨 화재야, 손님들 얼굴찍혀 못오게 하려고 설치하는 거지”라고 말했다. 업주들은 “여기 철거 시작한 이후로 새로운 손님은 안 온다. 문은 열어놓고 있지만 공치는 날이 더 많다”며 “단골장사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재개발이 끝나면 이곳은 지상 최고 47층, 총 2244가구가 거주하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된다. 인근의 한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이곳의 조합원 수가 400여 명 남짓으로, 일반분양 물량이 많기 때문에 사업성이 높다”며 “지하철 4호선 초역세권이어서 일단 짓기만 하면 돈을 버는 사업”이라고 말했다.
성매매여성들은 아직도 성북구청 앞에서 생존을 위한 철거반대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업주들은 조합으로부터 돈이라도 얼마 받고나가지만 성매매여성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미아리텍사스촌 성매매여성들에 대한 공식적 통계는 없지만 이곳에서 일명 ‘아가씨’로 일하는 여성들의 평균 연령은 40대 중후반이다. 50대 여성들도 꽤 있다는 게 업주들의 얘기다. 40~50살에 일자리를 잃은 성매매여성들이 갈곳은 많지 않다. 재개발 조합원들의 이주가 마무리되는 연말이 되면 텍사스촌은 흔적조차 없이 철거될 예정이다.
성북구는 성매매여성들을 최대한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구청 예산을 추가로 편성해 여성 1인당 최대 780만원(12개월 기준)까지 지원하기로 했다.
단순 현금지급은 아니다. 성매매여성들이 구청에서 제공하는 직업교육 등을 이수하면 매달 일정액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지원한다.
예를 들어 자격증 취득 교육·진학교육 과정을 월 80%이상 이수할 경우 월 70만원씩 12개월간 지원하거나, 공동작업장이나 인턴십 프로그램 등 자활지원사업에 참여하면 매달 60만원씩 12개월간 현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성매매여성이 월 150시간씩 자활지원사업에 참여하면 기존 지원금과 합산해 월 최대 210만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 본격적인 지원은 오는 10월부터 시작된다. 여성들이 구청의 자활프로그램에 얼마나 참여할 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한때 자신도 성매매여성이었다는 한 업주는 “스무살에 여기 들어와 나이 오십 될 때까지 자기 가게도 안 차리고 이 일을 한 아가씨가 여길 떠나면 무슨 일을 하겠냐”며 “결국 더한 곳으로 밀려나겠지”라고 말했다.
KIA 투수 김도현(25)은 취사병이었다. 2019년 한화에서 데뷔하고 2022년 KIA로 트레이드된 뒤 현역 입대해 육군 39사단에서 취사병으로 1년6개월 복무했다. 요리를 배운 적은 없지만 자취하며 익힌 실력으로 버텼다.
취사병은 군대에서 가장 바쁜 보직이다. 가장 먼저 일어나 부대원들의 식사를 준비해야 한다. 김도현은 “온종일 감자와 양파를 까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며 웃었다.
절대 운동만 할 수 없었던 그 취사병 시절을 김도현은 야구 인생의 터닝포인트였다고 말한다. 시간이 빠듯하니 더 집중해서 운동했기 때문이다. 김도현은 “개인 정비 시간 체력단련실에서 웨이트트레이닝 하고, 밥 먹고 잠시라도 짬이 나면 연병장을 달렸다. 자기 전에도 섀도 피칭을 몇번씩 했다”고 말했다.
‘야구팬’인 부대 간부의 도움도 받았다. 김도현은 “사회인 야구를 하는 간부님이 있어서 캐치볼 상대를 해주곤 하셨다. 군 생활을 하면서 허투루 시간을 보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다”고 말했다.
밀도 있는 훈련의 효과였을까. 제대 후 김도현의 구속은 극적으로 상승했다. 시속 140㎞대 초반이던 직구 구속이 전역 이후 148㎞까지 찍혔다. 구위까지 묵직해지면서 1군에서도 통하는 투수로 성장할 수 있었다.
김도현은 올해 전반기 대반전을 쓴 KIA에서도 최고 히트작 중 1명으로 꼽힌다. 이미 지난해 선발 투수 줄부상 속에서 대체 선발로 들어가 KIA가 통합우승으로 가는 길을 지탱한 김도현은 올해에는 개막부터 선발 한 자리를 꿰차고 평균자책 3.18에 4승3패로 전반기를 마쳤다. 16차례 선발 등판해 8차례를 퀄리티스타트(6이닝 이상 3자책 이하)로 장식했다.
김도현은 남은 시즌 목표에 대해 “로테이션 안 거르고 꾸준히 나가서 팀에 보탬이 되고 싶다”고 했다. 전반기 성적이 워낙 좋았던 터라 2점대 평균자책 같은 개인 기록이 아예 생각나지 않는 건 아니지만, 한 시즌을 온전히 치르는 게 우선이다.
풀타임 선발은 처음인 만큼 한여름 무더위를 이겨내기 위해 체력 관리도 신경 쓰고 있다. 김도현은 “더위 걱정이 좀 있기는 하지만 그 또한 다 이겨내야 한다”고 말했다.
여름 더위를 이겨내는 데도 어쩌면 취사병 경험이 도움이 될지 모른다. 김도현은 “취사병 시절 가장 힘들었던 게 한여름 닭튀김을 할 때였다. 더운 날 뜨거운 기름 앞에서 워낙 많은 양을 튀겨야 하다 보니 땀이 줄줄 흘렀다. 그때 경험이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웃었다.
스토킹과 폭행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은 지방의회 의원을 제명한 조치가 정당하다는 항소심 판단이 나왔다.
광주고법 전주재판부 제1행정부(재판장 양진수)는 9일 유진우 전 김제시의원(58)이 김제시의회를 상대로 제기한 ‘의원 제명 처분 취소 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청구를 기각하고 1심 판결을 유지했다. 소송 비용도 원고가 부담하도록 했다.
유 전 의원은 과거 연인이었던 A씨를 지속해서 따라다니고 연락을 시도한 혐의로 기소돼, 지난해 11월 1심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그는 법원의 접근금지 명령을 받고도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직접 찾아간 것으로 드러났다.
같은 해 12월에는 A씨가 근무하던 마트에서 얼굴에 침을 뱉고 볼을 꼬집는 등 폭행한 혐의도 추가로 받았다.
김제시의회는 사건이 불거진 지 5개월 만인 지난해 4월 제명안을 의결하고 유 전 의원의 의원직을 박탈했다. 당시 시의회는 “시민 여러분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지방의회가 의원의 품위를 현저히 훼손한 행위에 대해 제명 결정을 내린 것은 의회 자율권 범위 내에 있으며, 재량권을 일탈하거나 남용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지 한 달이 넘었다. 집권 초반이라 언론이 우호적인 것인지 실제로 ‘일하는 정부’이기 때문인지 단정하긴 이르지만, 대통령이 부지런히 국정을 챙긴다는 인상만큼은 분명하다.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잘한 일은 북한 접경 지역 주민의 소음 민원 해결과 대북전단 살포 중지다. 국가안보와 인간안보가 상충하지 않은 좋은 예다. 북측의 호응도 긍정적인 신호다. 그러나 여전히 한반도 평화 정착에 필요한 근본적인 쟁점이 남아 있다.
한국 현대사는 오랫동안 외세로부터 침략을 당해 왔다는 피해자 민족주의-임지현이 말한 ‘희생자 의식 민족주의’-가 주류 담론으로 기능해왔다. 이러한 피해 의식은 베트남전과 이라크전 참전을 은폐하는 역사 왜곡일 뿐 아니라, 이미 북한과 회복 불가능한 격차가 벌어졌음에도 대결적·공세적 태도를 고착화하는 정치·심리적 장치가 된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여전히 ‘빨갱이’라는 표현이 거리낌 없이 통용되는 현실이 비극을 방증한다. 이는 보수 진영의 생존 전략이기도 하다.
이러한 구조에서 북한을 도발하는 행위를 중단하게 한 대통령의 지시는 거대 양당 체제에서 두 정당 사이에 그래도 차이가 있다는 ‘위안’을 준다. 대북관, 한반도 평화 전략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을 구분하는 ‘유일한’ 변별점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내란 사건을 수사하는 조은석 특별검사팀은 지난해 비상계엄 선포 전 남한군이 평양에 무인기를 날려 북한의 공격을 유도했다는 의혹을 더욱 철저히 규명해야만 한다.
우리는 “한민족은 백의민족이고 평화를 사랑한다”는 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이는 신화이다. 일종의 본질주의적 사고방식으로, 원래부터 그런 민족이나 국가는 없다. 한국전쟁 후 이승만의 광적인 북진 통일 의지 때문에 북한이 한반도 전쟁 억지력을 위해 주한미군의 주둔을 원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박정희는 군사 쿠데타 이후 그의 저서 <국가와 혁명과 나>에서 “한 번도 남을 침략해 보지 못했던 이러한 민족사는 불태워 없애야 한다”고 울분에 찼지만, 그의 말은 사실이 아니다. 이규철의 역저 <정벌과 사대>가 보여주듯이, 15세기 조선의 대외 원정은 여진이나 왜구의 약탈에 대한 소극적 대응이 아니라 조선 스스로 기획한 적극적 군사·외교 정책이었다. 사료를 보면 외세의 침입 횟수나 규모가 크지 않았는데도, 조선은 그보다 훨씬 대규모의 토벌을 감행했고 여진족에 대한 선제 정벌도 있었다. 1950년 육군사관학교 개교 이래 생도들의 경례 구호는 1988년 올림픽 이후까지도 “북진통일(北進統一)·고토회복(古土回復)”으로 사실상 ‘북침’을 표방한 것이었다.
이처럼 한국사는 피해뿐 아니라 가해 경험과 의지가 적지 않았음에도, 우리는 임진왜란·병자호란·일제 식민지 등 피해 서사에만 젖어 있다.
일제 때도 조선은 식민지를 찾았다
억압을 당하는 현실을 인식하는 일은 깨어 있는 인간이 되기 위해 필수적이지만, 문제는 ‘피해 의식’ 자체이다. 국가주의, 민족주의 같은 정체성의 정치가 본디 피해자 의식에서 비롯한 원한(르상티망)의 정치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가해국임에도 패전과 핵폭탄 피폭 경험을 통해 강한 피해 의식을 형성했고, 이는 일본 우익을 결집시키는 주된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러시아 민요가 흔히 ‘한(恨)의 정서’를 담았다고 하는데, 러시아는 외세의 침략을 많이 겪은 만큼 주변국을 침략한 전력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전쟁이 장기화하는 동안 자국 내 반전 운동이 두드러지지 않는 것은 러시아 사회에 깊숙이 스며든 피해자 민족주의와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피해 서사는 침략과 선제공격을 합리화하고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게 한다.
근대 국제질서에서 국가의 자기 결정권은 개인의 천부인권과 같이 당위적 권리로 간주되며, 국가 체제 안정을 위한 근본 원칙처럼 여겨져 왔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 자기 결정권은 전쟁을 합리화하는 만능 논리가 되었다. 실제로 국가들이 우선적으로 추구한 것은 자기 결정이 아니라 인접 영토를 흡수·통합하려는 ‘영토 보전(territorial integrity)’의 욕구였다. 근대 국가와 자본주의는 현상 유지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팽창하는 생명체이다.
“돈 쓰는 국방에서 돈 버는 국방으로”라는 구호가 보여주듯이, 2000년대 한국 국방개혁의 핵심은 첨단 기술로 전력을 강화하면서 병력은 줄이고, 무기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탈바꿈하겠다는 데 있다. 실제로 현재 남한과 북한은 세계 무기 시장에서 각각 세계 10위권 내의 주요 수입국·수출국으로 자리 잡았다. 남북한 모두 무기 시장의 주요 행위자로 부상한 상태에서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라는 말은 민망하다.
심지어 일제강점기 피식민지국이었던 조선은 일제를 따라 타국에 진출하고자 했다. 태평양전쟁 말기, 일제는 물자의 절대 부족으로 가미카제용 비행기 동체를 송진(松津)과 대나무로 만들 정도로 상황이 열악했다. 이러한 사정이었음에도, 권명아에 의하면 식민지 조선에서는 남방 지역(남태평양)으로의 진출이 1938년을 전후로 급증하기 시작했고, 1941~1943년에는 남방에 대한 담론이 조선의 매체를 장악할 정도였다.
당시 태평양 열도 남방은 무진장 자원의 고장으로 알려져 있었다. 자신을 일제와 동일시한 조선의 자본가들은 전세가 일본에 유리할 때마다 남방 개발과 그 이익의 실제 획득 가능성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그 관심은 단순한 몫이나 지위를 넘어, 대동아공영권 속에서 ‘본토인으로서 조선’이 차지할 자리와 그에 대한 자부심으로까지 이어졌다.
무기 수출국, 한국을 생각한다
한겨레 7월2일 온라인판에 따르면, 프란체스카 알바네제 유엔 팔레스타인 점령지 특별보고관은 ‘가자 학살의 수혜 기업들’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공개하면서 구글·마이크로소프트 등 60개 기업의 이름을 밝혔다. 그는 이 기업들이 가자지구 공격과 유대인 정착촌 건설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해 경제적 이득을 챙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목록에는 한국 기업 HD현대와 두산도 포함됐다. ‘방위산업’이라는 포장 뒤에서 학살용 무기를 연구·개발하고 수출하는 기업들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진보 언론까지 이를 “K방산”이라고 자랑스럽게 보도한다면, 원자력과 무기 수출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성찰의 기회는 사라질 것이다.
다음 두 발언은 1992년부터 2025년까지 지난 33년간 한국의 위상 변화와 자기 인식을 잘 보여준다.
“오래전 이쪽(남한)은 강대국이 넘겨준 원자력 정조대를 차게 되었고, 또 남북한의 비핵화 공동선언 때 우라늄 농축도 안 하겠다, 화학 재처리 공장도 안 갖겠다는 다짐과 함께 정조대의 버클을 한층 더 졸라맸으므로 여기의 핵 확산 가능성은 전혀 없습니다. (중략) 이 원자력 정조대의 열쇠는 주변 4대국이 갖고 있는데 열쇠 모양이 서로 달라 네 나라가 따로따로 열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중 어느 나라도 그것을 열어줄 리가 없습니다.”(1992년 6월4일자, 중앙일보, 이창건 한국원자력학회장)
한편 지난달 11일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재명 대통령이 국정원장에 이종석을 임명한 것을 두고 “미국 풀도 먹고 중국 풀도 먹고 러시아 풀도 먹어야지, 미국 풀만 먹으면 영양실조 걸린다”며 이를 국익 외교라고 평가했다.
한반도가 강대국에 의해 철저히 구속되어 있다는 현실을 “원자력 정조대”라는 매우 성별화된 비유로 표현한 것은 유감이지만, 강한 국가로의 열망과 좌절이 ‘잘’ 표현되어 있다. 반면 한국의 현실을 “풀 뜯는 소”에 비유한 것은 우리가 4강을 상대로 선택성, 능동성, 주도권이 있음을 강조하는 언설이다.
‘국익 외교’와 평화 국가가 양립하기 위해서는, 대북 문제만이 아니라 무기 자본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 돈이 최고인 자본주의 체제에서 쉽지 않은 일이다. 이재명 정부가 접경 지역 소음 해소와 대북전단 살포 중지로 남북 긴장 완화의 첫발자국을 디뎠듯이, 이제 한국 사회도 ‘피해자의 옷을 입은 군사주의’를 벗어던질 사회적 모색이 절실하다.
4강 사이에서 자주적으로 균형을 찾되, 북한과의 불필요한 대립을 거두고 무기 수출의 윤리까지 직시할 때 이재명 정부는 ‘일하는 정부’를 넘어 ‘평화를 위해 일한 정권’으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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