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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간녀소송 “복수 교육감 뽑자, 교육자치 훼손 안돼”···대전·충남 통합 추진에 교육계 혼란 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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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황준영 날짜26-01-15 20:23 조회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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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간녀소송 대전과 충남 행정통합이 추진되고 있지만 시도 교육청 통합이나 교육감 선출 방식에 대해서는 명확한 밑그림이 나오지 않으면서 교육계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교육계에서는 현행과 같은 복수 교육감 유지 요구와 함께 교육자치 훼손 우려도 제기된다.
대전·충남 교육감 출마예정자 7명은 13일 대전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양 시도 통합 논의 과정에서 현행과 같은 복수 교육감 체제 유지를 요구하는 청원서를 발표했다. 이날 청원서 발표에는 대전시교육감 출마를 준비 중인 김영진 전 대전연구원장, 성광진 대전교육연구소장, 오석진 전 대전시교육청 교육국장, 이건표 희망교육포럼 대표, 조기한 전 남대전고 교장, 진동규 전 유성구청장이 이름을 올렸다. 충남교육감 출마예정자 중에서는 이병도 충남민주혁신교육포럼 대표가 참석했다.
이들은 “행정통합 특별법 제정 논의가 본격화 되면서 교육행정 또한 통합교육감 선출로 이어질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며 “행정통합은 지역 경쟁력 강화를 위한 하나의 정책적 선택일 수 있으나 교육자치까지 일괄 통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현행 분리 선출 방식에 따른 복수 교육감제로 운영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들은 대전과 충남의 다른 교육 여건과 과제를 교육청 통합 반대의 주된 이유로 들었다. 출마예정자들은 “대전은 광역도시로서 신도심 과밀학급 해소, 원도심과 신도심 교육격차 해소 등에 행정력을 집중해야 하고, 충남은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소멸 위기 학교 되살리기와 도서 벽지 교육 격차 해소 등이 주어진 과제”라며 “극명하게 다른 두 지역 현안을 교육감 한 명이 관장하는 것은 어느 한 지역 교육의 질적 저하를 초래할 수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출마예정자들은 이날 발표한 청원서를 행정통합 특별법안을 마련 중인 더불어민주당 특별위원회에 전달하고, 대전과 충남 교육청이 각각 행·재정적 독립권을 유지하는 교육자치 특례 조항 명문화와 복수 교육감제 추진을 요구할 방침이다.
교육계는 행정통합 추진으로 가장 큰 된서리를 맞은 곳이다. 교육계 의견과 무관하게 행정통합에 따른 시도 교육청 통합이 논의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5개월도 남지 않은 교육감 선거는 기본적인 룰도 정해지지 않아 교육계와 출마예정자들의 혼란과 우려가 큰 상황이다.
교육단체들 사이에서는 교육감 직선제 폐지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더해진다. 아직 민주당 안은 나오지 않았지만 앞서 국민의힘이 국회에 제출한 통합 특별법안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교육감 선출 방식을 다르게 운영할 수 있다’는 특례 조항이 포함돼 있다. 이를 자치단체장과의 러닝메이트제나 임명제 도입 포석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대전교육시민연대회의는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국민의힘 발의 법안에 포함된 교육감 선출 방식 특례는 교육자치 원칙을 정면으로 거스르고 교육을 정치 권력에 종속시키며 교육감 직선제를 무력화할 수 있는 독소 조항”이라며 “향후 특별법 논의에서 교육감 직선제 유지와 교육자치 독립성 보장 등의 원칙이 명문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특별법에 러닝메이트제를 포함한 교육자치 훼손 조항이 반영되면 헌법이 보장한 교육자치와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기 위해 헌법소원도 불사하겠다”고 밝혔다.
설동호 대전시교육감과 김지철 충남도교육감도 이날 최교진 교육부장관과의 면담에서 행정통합 추진 과정에서 교육계 의견이 반영되도록 교육부의 지원을 요청하면서 교육감 선출 방식 등의 현행 유지를 건의했다.
1980년대 아동 유괴 사건의 용의자로 몰려 경찰에게 불법구금과 고문을 당했던 국가폭력 피해자에게 정부가 8000만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4부(재판장 박사랑)는 지난 14일 이상출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의 선고기일을 열고 “정부가 이씨에게 8000만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이씨는 1981년 9월 ‘이윤상군 유괴·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몰렸다.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범인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꼭 잡아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한국 사회 전체의 이목이 쏠렸다. 경찰은 영장도 없이 이씨를 연행해 여관방에 가뒀다. 이씨의 냉동 트럭이 사체 유기에 쓰였을 것 같다는 게 이유였다.
짬뽕 국물을 얼굴에 붓고, 뜨거운 욕조에 상체를 밀어 넣는 식의 고문이 4박5일간 이어졌다. 이씨는 끝내 “내가 죽였다”고 허위 자백을 했다. 경찰은 자백 외에 다른 증거가 나오지 않자 “그냥 보낼 수 없다”며 다른 혐의를 만들어냈다. 유괴 사건의 진범은 두 달 뒤에 잡혔다. 이씨는 재판에서 무죄를 받았지만 40년 넘게 후유증에 시달렸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화위)는 2024년 2월 이씨 사례를 ‘경찰에 의한 불법구금 및 가혹행위 등 인권침해 사건’으로 보고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이씨는 같은 해 8월 “국가가 5억원을 배상하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진화위 결정은 권고일 뿐이라 피해자가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내야 배상을 받을 수 있다.
법원은 “이씨가 국가의 불법행위로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입었을 것은 경험칙상 분명하다”며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국가가 도리어 가해자가 되어 국민을 불법으로 구금하고, 위법하게 증거를 수집해 재판을 받게 했다”며 “이는 조직적·의도적으로 자행된 중대한 인권침해행위로, 유사한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불법행위가 있었던 1981년으로부터 이번 소송의 변론 종결일까지 44년에 가까운 시간이 지나 배상이 장기간 지연된 사정도 위자료 증액 사유로 참작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씨가 경찰의 고문으로 한쪽 눈의 시력을 잃은 점은 위자료 산정에 반영되지 않았다. 재판부는 “경찰이 수사 과정에서 원고의 우안을 찌른 사실은 인정할 수 있다”면서도 이씨가 양쪽 눈에 백내장이 발생해 수술을 받았던 점, 경찰의 가혹행위 직후에 실명됐다고 볼 증거가 없는 점 등으로 보면 “정부의 불법행위로 인해 실명됐다고 단정하기는 부족하다”고 했다.
이씨는 판결에 불복해 2심 법원의 판단을 받기로 했다. 이씨를 대리한 최정규 변호사(법무법인 원곡)는 “경찰이 눈을 찌른 건 인정되지만, 이로 인한 실명을 인정할 수 없다는 판단은 납득하기 어렵다”며 “배상 금액보다도 국가의 불법행위로 시력을 잃었다는 피해 사실을 인정받기 위해 항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왜 그 시절 우리는 저렇게 행동하지 못했을까.’
2018년 한창 쏟아지던 ‘스쿨미투’를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스쿨미투 당사자들이 폭로하는 내용은 내가 사립 여중·고를 다니던 10여 년 전 직·간접적으로 경험했던 일화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소위 ‘그때 그 시절’엔 훈육 이상의 폭력이 난무했다. 당장 나만 하더라도 고등학교 입학 후 첫 체육 시간에 남교사에게 발로 차여 엉엉 울었던 기억이 있다. 물리적 폭력뿐만 아니라 성희롱과 성추행도 빠지지 않았다. 글로 옮기기 부적절한 발언을 했던 것은 물론이고 여학생들을 끌어안거나 팔뚝 안쪽을 꼬집던 남교사도 있었다. 그는 수업을 앞둔 쉬는 시간부터 미리 교실에 와 있었는데, 애들은 자리를 피하려고 교실 밖으로 나가곤 했다. 피해 수위만 놓고 보면 그때 우리가 겪었던 일과 미투로 폭로된 사례는 별반 차이가 없다.
폭행과 성추행은 그 당시에도 형법에 처벌 규정이 분명히 있었으니, 그러한 행위는 그때도 분명 잘못된 것이었다. 모든 교사가 그랬던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들의 행동은 충분히 지탄받을 만 했다. 그러니 스쿨미투를 보며 믿기지 않는 동시에 ‘왜 나는 말하지 못했는가’를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그 시절 우리도 똘똘하고 당찼다. 사춘기답게 때로 어른 알기를 우습게 알기도 했고 되바라지게 굴기도 했다. 친구들 여럿이 뜻을 모아 방학 보충수업에서 빠지는 것처럼 어떠한 종류의 집단행동을 하기도 했다. 그런 우리는 왜, 불쾌한 신체 접촉과 폭력에 관해선 이야기하지 못했을까.
어른이 되고도 한참 후에서야 불현듯 깨달았다. 우리가 멍청했거나 당차지 못했기 때문에 말을 못 했던 것이 아니라, 사회가 우리의 목소리에 화답하리란 기대를 갖기 어려웠기 때문에 그냥 넘어간 것이었겠구나. 그 당시 ‘말해봤자 아무도 우리 말을 들어주지 않을 거야’라는 좌절감에 매였다는 의미는 아니다. 10여 년이 훌쩍 지나고 나서 돌아보니 그때 우리 세대에게, 우리를 둘러싼 환경에 결여돼 있던 것이 무엇인지가 비로소 보이게 된 쪽에 가깝다. ‘네가 학교를 다닐 때에도 체벌이 있었느냐’라는 어떤 중년 선배의 악의 없는 질문을 듣고는 얼마나 황당했던지. 폭로와 고발이라는 선택지를 몰랐던(알아도 별 수 없었던) 그때 그 시절이 괜히 억울해졌다.
들불처럼 번졌던 스쿨미투를 계기로 개인의 용기 있는 행동이 갑자기 튀어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연대가 마중물로 작용한다는 점을 깨닫게 됐다. 익명의 학생들이 사례를 모아 폭로하는 출구로 소셜미디어가 활발히 활용됐는데, 소셜미디어에 그들의 용기를 받아줄 토양이 형성돼 있지 않았더라면 미투로 이어지지 못했을 수 있다. 소셜미디어에 친페미니즘 성향 사용자들이 모인 계기로 ‘페미니즘 리부트’를 꼽을 수 있으니 결국 페미니즘 리부트가 10대 여학생들의 용기를 끌어낸 마중물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10대 여학생들의 용기는 다시 다른 여성들의 용기가 됐다.
스쿨미투는 하나의 예시일 뿐이다. 시계열을 지난 10년으로 한정하고 봐도 수많은 연대가 작동했다. 2016년 5월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 이후 포스트잇으로 뒤덮인 강남역 10번 출구는 연대 그 자체를 시각화한 듯 했다. 당시 사회부 사건팀 소속으로 포스트잇 1004개를 전부 채록하면서 동시대 여성들이 표출하는 연대와 분노를 체감했다. 폭우가 쏟아지던 추모 1주기에는 기자가 아닌 여성으로서 친구들과, 수많은 이들과 함께 우비를 걸치고 강남역 일대를 행진했다.
[인터랙티브] 강남역 10번 출구 1004명의 목소리
2016년 10월 ‘#문단_내_성폭력’ 해시태그, 이후 터져 나온 문화예술계 성폭력 폭로, 2018년 1월 서지현 검사의 미투, 2018년 3월 김지은씨의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성폭력 폭로 등 연이은 사건들은 동떨어진 개별 사건으로 보이지만 실은 여성이 다른 여성을 어둠 밖으로 끌어내는 연대의 연쇄였다. 미투 당사자들의 발언을 되짚어보면 수많은 (잠재적) 피해자와 다음 세대 여성을 향한 책임감이 역력히 드러난다.
서지현 검사는 미투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성추행 피해자들에게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라고 했다. 미투의 동기 또한 “저 같은 고통을 겪는 후배는 없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글을 올렸던 것”이었다. 서 검사는 이후 그해 11월 인터뷰에서는 가해자와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이유로 “저 이후에 용기를 내서 미투를 하신 분들이 행복을 찾으셨다면 어쩌면 저도 그냥 사표를 쓰고 제 삶으로 돌아갔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많은 피해자들이 역고소를 당하고 창녀라는 소리를 듣고 온갖 음해와 2차 가해에 시달리는 것을 보고 해야 할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라고 밝혔다.
김지은씨는 책 <김지은입니다>에서 “한국에서 미투가 시작된 이후 그동안 침묵했던 여성들이 서서히 말하기 시작했다. 그들을 보면서 고민하고, 용기 내고, 주저하고를 반복했다”고 밝혔다. 그가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고발에 나선 이유는 “검은 그림자가 후배에게 다가가고 있었”고 “멈추지 않는 범죄를 방조하며 살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플랫]“읽어서 연대한다” <김지은입니다>를 다시 주문하는 이유
그 역시 자신과 연대하는 이들로부터 용기를 얻었다. 그가 방송에서 피해 사실을 폭로한 이후 일부 동료들은 ‘김지은과 함께하는 사람들’을 꾸렸고 그의 전화를 받은 선배는 “도와줄게”라고 답했다. 수많은 ‘김지은들’이 거리로 나왔다. 김지은씨는 “피해를 입은 사람에게는 잘못이 없고, 비난받을 이유가 없다고 말해주는 것, 그 말 한마디에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던 성폭력 피해자는 세상 밖으로 걸어 나온다”고 썼다.
21세기의 미투는 20세기에 여성들이 오래 묻어뒀던 일도 다시 되살려냈다. 1964년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남성의 혀를 절단한 혐의로 젊은 날 옥고를 치렀던 최말자씨는 국내외에서 번진 미투 운동을 보면서 용기를 얻었다. 여성단체를 찾아 도움을 받고 증거를 모아 2020년 재심을 청구해 지난해 최종적으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최말자씨는 평생에 걸친 투쟁 끝에 ‘혀 절단 사건’으로 기록됐던 자신의 과거를 ‘성폭력 피해자의 정당방위’로 다시 썼다. 그는 무죄를 선고받고 나서 다른 피해자들에게 “나와라, 나오면 혼자가 아니다. 가슴에 있는 한을 풀고 당당히 내 인권을 찾으라”고 마중물을 부었다.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 등에 성폭력 피해를 입었던 이들이 목소리를 내기로 결심한 계기 또한 서지현 검사의 미투였다. 피해자들의 증언이 모이며 이들이 겪은 일은 ‘집단적 경험’으로 구성될 수 있었다. 5·18 성폭력 피해자 모임 ‘열매’와 서지현 검사는 2024년 9월 만나 서로가 서로의 용기였다고 말했다. 정부 공동조사단에 가장 먼저 조사를 신청한 최경숙씨는 “검사님 덕분에 내가 여기에 있다”고 했고, 서지현 검사는 지난해 11월 ‘열매’ 기자회견에서 “5·18 성폭력 피해자들이 제 미투를 보고 용기를 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참 많이 울었다. 이렇게 우뚝 선 이들의 모습이 또 다른 피해자들에게 희망과 용기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우리는 서로의 증언자]‘익명’으로 남은 ‘5·18 성폭력 조사 보고서’…‘본명’으로 나타난 ‘증언자’들
한 여성이 용기를 내고, 그 용기에 다른 여성들이 연대를 보내고, 그 연대로 인해 다른 누군가가 또 용기를 내고…. 기사나 아카이브에 기록되지 않은 수많은 이들도 누군가의 용기가 됐을 것이다. 편의상 최근 10년으로 한정했을 뿐, 사실 전체 여성운동사가 곧 이러한 용기-연대-용기-연대의 순환 과정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지난 10년 동안 미투만이 아니고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 시위, 임신중지 합법화 시위, 페미사이드 철폐 시위, 딥페이크 성착취물 규탄 시위 등 손으로 꼽을 수 없을 만큼 많은 저항이 터져나왔다. ‘우리는 서로의 용기다’, ‘나는 너다’, ‘위드 유(With you)’ 등의 구호는 최초의 출처를 추적하는 일이 의미가 없을 정도로 여성들의 입에 착 붙었다. 시위에 나온 여성 중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위해 나온 이는 아마 없을 것이다. 온라인 해시태그 운동에 동참한 이들도 마찬가지다. 여성들은 먼저 간 누군가와 다음에 올 이들을 위한 몫까지 저마다 2인분, 3인분씩의 의무감으로 길거리에 나오고 포스트잇을 붙이고 후원 활동에 나섰다. 그렇게 더 많은 여성들이, 피해자들이 어둠 밖으로 나왔다.
여성 연대란 것을 들여다보면 참 신기하다. 여성들은 일찍이 여성 인권을 외쳤던 앞선 세대 여성에게 빚지는 동시에 다음 세대 여성에게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줘야겠다는 의무감에 빚진다. 빚을 독촉하는 이가 없어도 그렇게 되는 것이 여성 연대의 신비로운 자연스러움이다. 누가 가르친 것도 아닌데 여성운동사를 알아가다 보면 그리고 동시대 여성으로서의 감각을 깨우다 보면 그렇게 된다.
이 연대감 앞에서 ‘네가 당한 것도 아닌데 왜 그러냐’, ‘심하게 차별받은 건 윗세대 아니냐’는 비아냥은 곧바로 힘을 잃는다. 먼저 목소리를 낸 이들이 얼마나 큰 용기를 끌어모았을지 알기에, 그 용기에 빚을 졌기에 연대로나마 화답하는 것이다. “나 같은 피해자가 더는 나오지 않길 바란다”, “다음 세대 여성들은 더 나은 세상에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흔한 말도 전부 진심일 것이다. 여성들은 세대를 넘어 국경을 넘어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스쿨미투 당시 나를 강력하게 후려쳤던 감각 중 하나 역시 부채감이었다. 미투가 나온 학교 목록에 모교가 있을지, 있다면 그 가해자가 ‘그때 그 시절’과 같은 교사일지 조마조마하며 알아볼 때의 심정은 차마 말할 수 없다. 그때 우리가 침묵한 탓에 가해자를 후배들에게 물려줬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잊히지 않는다. “쪽팔리고 창피해서”, “죄책감 때문에” 조직의 배신자란 낙인을 무릅쓰고 김지은씨의 편에 섰다는 연대자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용기에 연대라는 답을 보내야겠다’, ‘그렇게 해서 더 많은 이들이 용기를 낼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데 일조해야겠다’ 싶으면서도 사실은 ‘나와서 말하세요’라고 할 수 없다는 점도 잘 안다. 미투 당사자, 집회 주최자와 참가자, 발언자 등은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용감한 이들이다. 그들이 평범하고 특별히 투쟁적이지 않은 편이라고 스스로를 평가할지 몰라도, 결과적으로 먼저 나선 이들이 짊어진 짐을 보면 용기의 대가는 만만치 않다. 이 연대의 끝에는 개인이 끌어 모아야 하는 용기의 크기가 지금보다 훨씬 작아진 사회가 있길 바란다.
‘여성들이 그렇게 목소리를 냈음에도 세상이 변한 것이 없다’는 류의 회의가 떠돈다. 바뀌는 게 없는 것 같아 지쳤다는 여성들을 종종 접했다. 이는 곧 ‘페미니즘 리부트가 이룬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내가 이해하기로 페미니즘 리부트는 2015~2016년 즈음 터져나온 단일한 결절점이라기보다는, 이 글에서 언급된 사건들을 포함한 일련의 흐름이다. 그 흐름 속에서 형성된 것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여성들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한 것’이라고 답하겠다. 지난 10년은 여성들이 서로가 서로를 구원하기 위해 분투했던 시기로 기억될 만하다. 세상이 여전할지라도 우리가 달라졌다면 우리가 뭉칠 수 있는 만큼의 세상은 바꿀 수 있는 것 아닐까. 어쩌면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이미 바뀌었을 수도 있다.
이 연대가 지속될지에 관해서는 저널리스트 레베카 솔닛이 재난 현장에서 찾아낸 연대와 변화의 가능성을 빌어 이야기하고 싶다. 솔닛은 대지진, 테러, 허리케인 등이 휩쓸고 지나간 지역에서 디스토피아적 예단과는 달리 연대라는 감정이 솟아난 현상을 저서 <이 폐허를 응시하라>로 써냈다. 재난 그 자체가 천국이었다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재난 속에서도 인간애와 사회 변혁, 공동체 의식을 꽃피워냈다는 것이다. 재난이 연대의 원인이었다기보다는 평소엔 물 밑바닥에 깔려 존재하는 줄도 몰랐던 연대가 재난으로 물이 휩쓸려나가니 드러났다는 쪽에 가깝다.
솔닛은 이렇게 말한다. “재난은 기본적으로 끔찍하고 비극적이고 슬픈 일이며, 제아무리 긍정적인 효과와 가능성이 부수적으로 나타난다 해도 바람직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마찬가지 이유, 즉 재난 속에서 생겨났다는 이유로 그런 효과를 무시할 수는 없다. 사람들이 자각한 열망과 가능성은 너무도 강력해서 폐허 속에서도, 잿더미 속에서도, 아수라장 속에서도 빛을 발한다. (중략) 요컨대 재난을 환영하자는 게 아니다. 재난이 이런 선물을 창조하지는 않지만, 선물이 도착하는 통로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를 읽으며 재난의 자리에 젠더폭력, 성차별, 여성 억압을 대입해 보았다. 그 자체로는 전혀 바람직하지 않지만 그것을 계기로 여성들은 열망과 가능성을 자각하게 되고 다른 여성과 연대하게 된다. 우리의 본성이 크게 뒤바뀌지 않는 한 젠더폭력, 성차별, 여성 억압은 연대의 고리를 더 선명하게 드러낼 것이다.
최근 코미디언 강유미씨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올린 ‘중년 남미새’ 영상이 큰 화제가 됐다. 이 영상에는 댓글이 무려 2만2000개 이상 달렸는데, 중년 여성 내면의 여성혐오를 풍자하는 내용에 맞춰 ‘그럴 시간에 아들 교육 잘 시키라’는 성토의 집합소가 됐다. 그중 자신을 학생이라 소개한 여성들의 댓글이 눈길을 붙잡았다. 이들은 학교에서 동년배 남학생들이 얼마나 무분별하고 일상적으로 성희롱과 성추행을 일삼는지 폭로하고 있다. 과거 스쿨미투가 어른-아이, 교사-학생의 위계 구도 속에서 빚어졌다면 이제는 동년배가 성별에 따라 성폭력 피해자와 가해자로 나뉜 것은 아닌지 우려가 든다.
[플랫]스쿨미투 7년, 여전히 성범죄에 관대한 교실
이것을 보며 만약 10대 여성들이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공론화한다면 기성세대로서의 나는 어떤 연대를 보내야 할지 고민해 봤다. 당하고도 말하지 못했던 그 시절을 지나온 어른은 이제 말하려는 이들을 위해 어떤 사회적 여건을 마련해줘야 할까. 용기를 낸 개인의 짐을 어떻게 덜어줄 수 있을까. 역시 또 부채감이 작동한다. 이처럼 ‘연대할 거리’가 끝이 없다.
▼ 김서영 기자 westzero@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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