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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홈페이지 상위노출 중 “라틴 아메리카와 운명공동체”···미 ‘아메리카 대륙 중시’ 안보전략 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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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황준영 날짜25-12-14 02:54 조회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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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홈페이지 상위노출 미국이 최근 서반구를 중시하겠다는 내용의 국가안보전략(NSS)을 발표한 상황에서 중국이 라틴 아메리카(중남미)와의 ‘운명공동체 구축’ 구상을 담은 정책 문건을 내놨다.
10일 신화통신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이날 ‘중국의 라틴 아메리카 및 카리브해 정책 문건’을 발표하면서 “중국·중남미 운명공동체 공동 건설 ‘5대 공정’을 함께 추진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 문건은 2008년, 2016년에 이어 3번째이자 9년여 만에 발표된 것이다.
중국은 “현재 세계는 100년간 없었던 대변국(서구 열강의 침입과 내부의 급격한 변화로 인해 기존 질서가 크게 흔들리고 붕괴하는 것) 속도가 빨라지고 있으며 국제적으로 힘의 비율이 심각히 조정되고 있다”면서 “글로벌사우스(주로 남반구에 위치한 개발도상국)의 기세가 강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미국을 겨냥한 듯 “세계 경제의 성장 동력이 부족하고 국부적 충돌이 빈발하고 있다”면서 “일방적인 괴롭힘이 국제 평화·안전에 해를 끼치고 있으며, 인류 사회는 전례 없던 도전에 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은 단결, 발전, 문명, 평화, 민심 등 주제를 정책 주요 방향(공정)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단결’과 관련해선 “서로의 핵심 이익과 중대 관심사를 지지하자”라면서 “중국 정부는 절대다수 중남미·카리브 국가가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키고 세계에 하나의 중국만 있음을 승인한 점을 높이 평가한다”고 밝혔다.
‘발전’ 항목에선 무역·투자, 금융, 에너지·자원, 인프라, 제조업 및 농업, 과학기술, 우주, 해양, 세관 검역, 기후변화, 원조 등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 구상) 분야에 대한 각국의 참여를 환영한다고 밝혔다.
‘평화’ 부분에선 대량살상무기(WMD) 확산 방지를 위한 협력을 제안했다. 그러면서 테러리스트 등에 대한 WMD 제조·획득·보유·운송·사용 지원 금지 등을 골자로 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1540호의 전면적·균형적이고 지속 가능한 집행을 강조했다.
중국 정부는 “개발도상국이자 글로벌사우스의 일원으로서 중국은 항상 중남미를 포함한 글로벌사우스와 함께 호흡하고 운명을 같이한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을 의식한 듯 “중국과 중남미 관계는 제3자를 겨냥하거나 배척하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이와 동시에 “제약받지도 않는다”고 밝혔다.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통일교 사업 관련 청탁을 하고, 김건희 여사에게 명품 가방과 목걸이 등 금품을 전달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에게 민중기 특별검사팀(특검)이 징역 4년을 구형했다. 특검은 “막대한 자금력을 이용해 정치세력과 결탁해 공권력을 부당하게 이용한 사안으로 대의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중대범죄”라며 “공적 업무 수행의 공정성과 국민 신뢰가 흔들리는 중대한 결과가 초래됐다”고 밝혔다. 윤 전 본부장 측은 “위법한 증거에 의해 자백을 받아내고 일괄 기소했다”며 일부 혐의에 대해 무죄를 주장했다. 최근 알려진 더불어민주당 금품 수수 의혹 등에 대해선 언급을 하지 않았지만, “통일교의 평화주의 이념에 따라 양당 부부(윤석열 후보 부부, 이재명 후보 부부) 모두에게 행사에 참석해줄 것을 요청한 것”이라며 “특정 정파에 접근한 게 아니다”라고 밝혔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재판장 우인성)는 10일 정치자금법과 청탁금지법 위반, 업무상 횡령 등 혐의를 받은 윤 전 본부장의 결심 공판을 열었다. 이날 특검은 윤 전 본부장에 대해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징역 2년, 청탁금지법 위반 등 나머지 혐의에 징역 2년 등 총 징역 4년을 구형했다. 특검은 “ 피고인은 통일교 2인자로서 교세 확장과 영향력 확대를 위해 이같은 범행을 저질렀다”며 “사법 시스템을 교란하고 명백히 증거가 존재하는데도 범죄를 부정하고 있어 중형 선고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윤 전 본부장은 김 여사에게 통일교 현안을 청탁하려고 2022년 4~6월 2000만원 상당의 샤넬 가방 두 개와 2022년 6~8월 6000만원대 영국 그라프 다이아몬드 목걸이, 천수삼 농축차 등을 ‘건진법사’ 전성배씨에게 전달한 혐의를 받는다. 또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에게 1억원의 정치자금을 제공하고, 이를 통해 윤 전 대통령과 접촉했다는 게 특검 측 주장이다. 이를 통해 캄보디아 메콩강 부지 개발 등 공적개발원조 사업(ODA) 지원, 대통령 취임식 초청, 유엔 제5사무국 한국 유치 등 통일교 현안을 청탁하고, 일부는 성사됐다고 봤다.
특검은 “대법원 판례를 보면 알선수재에서 공무원이 금품을 받을 때 반드시 청탁과 관련해 현안이 존재할 필요가 없고, 알선 상대방이나 청탁 직무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특정될 필요가 없다”며 “알선 내용은 친분 관계와 이익, 수수한 경위나 시기 등 제반 사정을 종합해 판단한다. 알선수재와 금품 사이 포괄적인 대가 관계가 있으면 충분하다”고 했다.
이어 “피고인은 권성동을 통한 윤석열에 대한 청탁, 전성배를 통한 김건희에 대한 청탁 등 두 가지 트랙을 통해 다양한 방법으로 유착을 형성하고 관련 청탁을 진행했다”며 엄벌을 내려달라고 했다.
윤 전 본부장은 최후 진술에서 “힘든 절망 속에서 매일 후회와 아쉬움 속에 보내고 있고, 깊이 반성한다”면서도 “교단의 명령을 정언명령으로 받아들이고, 오직 교단을 위해 일했다. 사적 횡령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특검 수사에 성실하게 임했으나 그 대가는 너무 가혹했다. 아무리 특수한 사정이 있다고 해도 국민 권리를 살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공판 절차가 마무리돼 증거인멸과 도주의 우려가 없는 상황이다. 신변의 위협을 받는 가족을 지키고 재판을 할 수 있게 기회를 달라”고 말했다.
앞서 윤 전 본부장은 지난 5일 열린 재판에서 2022년 교단 행사인 ‘한반도 평화 서밋’을 앞두고 국민의힘 외에 더불어민주당 정치인과도 접촉을 시도했다고 밝혀 논란이 됐으나, 이에 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변호인단은 “2022년 한반도 평화 서밋은 통일교의 평화주의 이념에 따라 정파와 상관없이 국민의힘과 민주당 모두 참여하는 것이 절실했다”며 “이에 한학자 총재가 피고인으로 하여금 양당 부부에게 참석해줄 것을 제안하도록 지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변호인단은 “통일교에서 특정 정파에 접근한 것은 아니라고 보인다”며 “피고인은 이에 대해 오해 소지가 있어서 당혹스러울 따름이라고 한다”고 전했다.
이날 변호인단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는 위법한 증거 수집에 의한 것이므로 탄핵돼야 한다”는 주장을 이어갔다. 변호인단은 “지난해 서울남부지검이 법원에서 발부받은 압수수색 영장은 김건희에 대한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였다. 이를 통해 다이어리와 PC 카카오톡 등을 압수한 것”이라며 “그런데 여기서 권성동에 대한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라는 별개의 사실을 확인한 뒤 특검에 그대로 전달해 기소한 것이기에 위법하다”고 했다.
재판부는 양측 의견을 종합한 뒤 내년 1월28일 선고하겠다고 밝혔다.
“종묘는 16세기부터 온전하게 남아 있는 유교 왕실 조상 사당의 뛰어난 예…전통 의례와 형태라는 무형문화유산의 중요 요소가 이곳에 지속….”
유네스코가 1995년 종묘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면서 인정한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Outstanding Universal Value)’의 항목이다.
유네스코가 제시한 6가지 등재기준(OUV) 중 4번째(ⅸ)에 해당되는 항목이다. 즉 ‘(ⅸ)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라는 것이다.
최근 서울시의 종묘 앞 초고층 건물(145m) 재개발 계획이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데, 논쟁의 초점이 주로 이 종묘라는 공간 및 건축물의 의미에 모여있다.
■귀신이 머무는 곳
필자는 공간보다는 종묘에 담긴 역사적, 상징적 의미를 살펴보려 한다.
종묘는 조선 왕조의 왕과 왕비의 신주(죽은 이의 아름을 적은 나무패)를 모시는 국가 사당이었다.
조선 건국 3년 뒤인 1395년(태조4) 창건됐다. 왕실은 ‘5묘제’에 따라 개국시조(태조)와, 4대 조상(고조·증조·조·부)의 신주를 종묘에 모셨다.
이후 새로운 신주가 들어설 때마다 태조를 제외하고 4대가 지난 신주는 차례차례 빠져야 했다.
그렇게 빠지는 신주는 별전(영녕전·1421년 조성)에 모셨다. 그런데 갈수록 문제가 생겼다. 개국 시조인 태조 외에 ‘종묘 정전’에서 영영 제사를 받는 ‘불천위(不遷位)’가 늘어난 것이었다.
게다가 선왕의 양자로, 혹은 반정으로 즉위한 왕은 아무래도 종법상 정통성이 결여되었다. 그럴 때 왕은 친아버지나 큰아버지, 고조할아버지를 추존왕으로 세운 뒤 그들의 신주를 종묘에 입주시키는 편법을 썼다. 그렇게 덕종(성종의 친아버지), 원종(인조의 친아버지), 진종(정조의 큰아버지이자 양아버지), 익종(헌종의 친아버지), 장조(익종의 양자로 입적한 고종의 4대조인 사도세자) 등이 종묘에 ‘입주’했다.
■종묘의 입주자들
그러니 맨처음(1395) 정전 7칸으로 출발한 종묘는 정전 19칸과 영녕전 16칸으로 급증했다.(폐위된 연산·광해군 제외)
이중 창업군주인 태조를 비롯, 태종·세종·세조·성종·중종·선조·인조·효종·현종·숙종·영조·정조·순조·문조(익종) 등은 ‘불천위’로 종묘 정전에 영구 입주했다. 그런데 정전에는 이 15명 외에도 헌종·철종·고종·순종 등 4명이 남아 있다. 왜냐. 조선왕조가 멸망했기 때문에 이들의 뒤를 잇는 임금이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분들은 영녕전으로 옮겨갈 필요가 없게 됐다. 총 19명이다.
별묘(영녕전)엔 누가 입주했을까. 목조·도조·익조·환조·정종·문종·단종·덕종·예종·인종·명종·원종·경종·진종·장조·영친왕 등 16명이다.
이 명단을 보는 분들은 고개를 갸웃거릴 것이다. 즉 태조·태종·세종·성종·영조·정조 같은 분들은 ‘불천위’의 대접을 받을만 하다.
하지만 중종·선조·인조·순조·익종 등은 무슨 자격으로 불천위가 되었을까. 하기야 선조 이후, 즉 조선 후기 들어 불천위가 되지 않고 영녕전으로 이주한 ‘재위 왕’은 경종(1720~1724) 뿐이다. 또 재위기간이 너무 짧거나 억울한 죽임을 당한 정종·단종·예종·인종·경종 등의 심사도 편치않을 듯 싶다.
그 가운데 대리청정(8년여)과 2년3개월(재위기간)까지 해서 총 10년이나 조선을 다스렸고, 측우기까지 발명한 문종의 경우는 누가 봐도 억울할 듯 싶다. 문종이 다른 ‘영녕전’ 임금과 비슷하게 혈연적인 후사가 끊겼으니 영녕전 이사의 홀대를 받았던 것이다.
■‘종묘 사직’을 위해
예부터 ‘나라를 위해~’를 ‘종묘·사직(宗廟·社稷)을 위해~’나 혹은 줄여서 ‘종사(宗社)를 위해~’라는 식으로 표현했다.
무슨 뜻일까. ‘종묘’는 국왕의 선조를. 사직은 토지신인 ‘사(社)’와 곡식신인 ‘직(稷)’을 모신 곳이다.
위로는 조상을 제사지내고, 아래로는 백성을 섬긴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중 종묘는 군주가 천명을 받아 나라를 건국한 창업주와 그 후손이 이어가는 왕조의 정당성과 정통성을 상징하는 공간이었다.
왕조의 중대한 결정을 수행하고 국가의 중요 의례를 거행하기도 했다.
‘사직’은 어떤 의미일까. 예부터 ‘군주는 백성을 하늘로 삼고, 백성은 먹을 것을 하늘로 여긴다(王者以民爲天 而民以食爲天)’(<사기> ‘열전·역이기전’)고 했다. 그러니 군주는 ‘군주의 하늘인’ 백성이 먹는 곡식과, 그 곡식을 풍요롭게 만드는 땅을 귀히 여길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군주는 ‘종묘와 사직’을 걸고 정사를 펼칠 수밖에 없었다. 예컨대 1425(세종7) 6월 19일 세종은 “재앙을 물리칠 일이 있으면 언제라도 종묘와 사직단에 제를 올리게 하라”는 명을 내렸다.
■동전던지기로 천도?
종묘에서 열린 국가행사 중 눈길을 끈 이벤트가 1404년(태종4) 10월6일 펼쳐졌다. 이른바 ‘동전던지기로 도읍지 정하기’ 행사였다.
즉 1392년 개국한 조선 왕조는 ‘한양’을 새왕조의 도읍지로 삼았다. 1394년(태조3) 10월25일 천도가 이뤄지고 정궁인 경복궁과 함께 종묘와 사직단 건립이 이어졌다.(1395)
하지만 1398년(태조7) 경복궁에서 1차 왕자의 난이 일어나 피바다를 이룬다.
이방원(태조의 5남·태종)이 주도한 이 정변에서 세자인 이방석(?~1398)과 이방번(1381~1398) 등 이복동생이 무참히 살해됐다. 정변 직후 즉위한 정종(이방과·태조의 2남·재위 1398~1400)은 서둘러 개경으로 환도한다.(1399년 2월26일) 한양 천도 4년4개월만의 일이었다.
하지만 환도 후 1년도 안된 1400년 1월28일 제2차 왕자의 난이 일어나 태종(이방원·재위 1400~1418)이 등극한다. 즉위한 태종은 ‘재천도’를 구상한다.(1404) 맨처음 천도했던 한양(경복궁)과 무악(안산 앞 일대)가 유력한 후보지로 꼽혔다.
■한양이 ‘2길 1흉’
태종은 한양(경복궁)과 무악 땅을 둘러보기 위해 행차했다.(1404년 10월4일)
안산에 올라 무악땅(신촌·연희·망원·만리동 일대)을 살피던 지관들은 “한양보다 오히려 탁 트인 무악이 낫다”고 주장했다. 이에 태종은 “부왕(태조) 때는 ‘한양(경복궁)이 좋다’고 하던 자들이 이제와서는 왜 무악을 주장하냐”고 질책한 뒤 발길을 돌렸다.
이후 한양(경복궁)을 둘러본 태종은 종묘 앞에서 어가를 멈춘 뒤 묘안을 내놓았다.
“이제 종묘에 들어가 송도(개경)와, 한양(경복궁), 무악 등 도읍지 후보 세 곳을 두고 점을 쳐서 결정하겠다…더는 왈가왈부하지 마라.”
태종은 “모든 이가 쉽게 그 점의 결과를 알 수 있는 ‘척전(擲錢·동전던지기)’가 어떠냐”고 제안했다.
태종은 종친(태조의 조카)인 완산군 이천우(?~1417)와 조준(1346~1405) 등을 이끌고 종묘에 들어갔다. 태종은 향을 올린 다음 꿇어앉았고, 왕명을 받은 이천우가 쟁반 위에 동전을 던졌다. 그 결과 한양은 ‘2길(吉)1흉(凶)’, 송도(개경)과 무악(毋岳)은 둘다 ‘1길 2흉’의 괘를 얻었다.
태종은 이 점괘에 따라 새로운 도읍지로 ‘한양’을 최종 낙점한다. 이를 두고 ‘종묘·사직의 운명을 가를 도읍지를 결정하는데 동전던지기가 웬말이야’고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동전던지기(척전)도 점의 한 방법이었다. 철저하게 <주역>의 괘에 따랐다. 한꺼번에 동전 3개를 던져 앞 뒷면이 나오는 결과에 따라 하나씩 괘(卦·주역의 상징부호)를 만들어 길흉(吉凶)을 판단한 것이다.
■세종의 세자 등극을 고함!
1418년(태종18) 6월3일에도 중대결단한 내용을 조상에게 고하는 대사건이 종묘에서 일어난다.
세자를 충녕대군(세종·재위 1418~1450)으로 교체한 사건이다. 세자(양녕대군 이제·1394~1462)의 수없는 기행 및 난행을 참다 못한 태종은 “이제 천명이 세자를 떠났다”며 폐세자를 결정한다.
‘차기 주자’로는 폐세자(양녕대군)의 아들 이개(1414~1462)가 거론되었다. 그러나 “어진 사람(충녕대군을 가리킴)을 골라야 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도읍지를 정한 것처럼) 점을 쳐서 결정하자”는 의견을 유력하게 개진되기도 했다. 태종도 ‘점궤로 세자로 낙점하다’는 의견에 솔깃했다.
그러나 곧 “나라의 근본을 정하는 것이니 ‘어진 사람’을 고르는 것이 마땅하다”고 마음을 바꾼다. 그렇게 정리한 태종이 ‘어진 이’로 뽑은 분이 만고의 성군이 된 충녕대군(세종)이었다. 그런 뒤 종묘에 안치된 선왕들에게 세자 교체의 전말을 고하는 의식을 펼쳤다.
“…세자가 너무도 심히 패만(悖慢)하여 전혀 신하의 예절이 없어…폐하기를 청하고 충녕대군(세종)이 효성스럽고 우애스럽고 온화하고 인자하여 진실로 세자의 자격에 합당하므로 감히 고합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지만…
이렇듯 종묘는 천명을 받은 왕조의 정당성과 정통성을 상징하는 공간이었다.
그런데 고조부-증조부-조부-부 등의 직계가 아닌 이가 즉위한 경우는 어찌될까. 이 경우 의리상 선왕의 자식, 즉 부자관계를 표방해야 했다. 2대왕 정종이 동생인 정안대군(태종)을 세제가 아닌 세자로 삼은 것이 그 때문이었다.
1469년 승하한 예종(재위 1468~1469)의 뒤를 이어 즉위한 성종(1469~1494)도 그랬다.
성종은 20살에 죽은 세조의 맏아들인 의경세자(1438~1457)의 둘째 아들이었다. 예종은 세조의 둘째아들이었다. 따라서 선왕(예종)과 즉위왕(성종)은 삼촌-조카 사이였다.
하지만 종법상 왕위는 부(예종)→자(성종)로 처리되었다. 그러니까 예종을 의리상 아버지(부·황고)로, 의경세자를 큰아버지(백부·황백고)로 모셔야 했다. 그러나 성종은 친아버지를 그냥 둘 수 없었다.
1475년 성종은 명나라 황제의 고명으로 의경세자의 시호(회간왕)를 받는데 성공한다.
그런 성종에게 남은 관문이 있었다. 그것은 회간왕의 신주를 종묘에 ‘입주’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추존왕이 된 것과 ‘종묘 입주’는 별개의 문제라는 것이다. “왕위를 잇는 자는 선왕의 자식이니 사친(친아버지)을 돌볼 수 없다”는 게 옛 법도(<의례>)인데, 그것을 어찌 종묘에서 바꿀 수 있냐는 것이었다. 종묘 합사를 찬성하는 측도 만만치 않았다. 우선 회간왕이 명 황제의 고명을 받은 정식 국왕이 되었으니 무엇이 문제냐는 것이었다. 만약 종묘에 들어간다 해도 해결해야 할 숙제가 남아 있었다.
예종과의 차례를 어떻게 두느냐는 것이었다. 회간왕이 먼저 세자 직분에 있었고, 실제로도 형이었기에 회간왕→예종 순이라도 괜찮다는 의견도 개진됐다. 논란이 이어지자 성종은 ‘회간왕 부묘’를 두고 관리(동반 종3품 이상, 서반 정3품 이상, 예문관·대간 모두 참여)들의 중론을 모았다.
1475년(성종 6) 9월16일과 19일 두차례에 걸친 여론 조사 결과는 흥미로웠다. 의견을 낸 156명 가운데 찬성 86명, 반대 70명으로 집계됐다.
의견 개진 결과 찬성(55%)이 반대(45%)보다 많았다. 이에 성종과, 그 당시 수렴청정 중이었던 정희왕후가 회간왕(의경세자)의 종묘 부묘를 강행했다. 종묘에 부묘되는 회간왕에게는 ‘덕종’이라는 묘호가 붙었다. 덕종의 신주 위치는 예종의 위에 올랐다.
대신 호칭은 예종을 ‘황고(아버지)’, 친아버지인 덕종을 ‘황백고(큰아버지)’로 부르기로 정리했다.
■역적의 딸
그런데 추존(혹은 복위)와 종묘 부묘와 관련해서 여론을 모았던 사례가 또 있다.
7일의 왕비로 알려진 단경왕후 신씨(중종비·1487~1557)이다. 신씨는 이조판서·우의정·좌의정 등을 지낸 문신 신수근(1450~1506)의 딸이다. 1499년 성종의 둘째아들이자 연산군(1494~1506)의 이복동생인 진성대군(훗날 중종)과 혼인했다.
그러나 얽히고설킨 관계가 운명을 가른다. 연산군의 부인이 바로 신수근의 동생(거창군부인 신씨·1476~1537)이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연산군의 부인(거창군 부인)과 진성대군(중종)의 부인(단경왕후)은 고모와 조카사이였다. 그런데 중종반정이 일어나자(1506년 9월2일) 신씨의 아버지 신수근이 반정에 참여하지 않은 죄로 죽임을 당했다.
신수근이 “매부(연산군)을 폐하고 사위(진성대군·중종)을 세울 수는 없다”(<연려실기술>)고 반대한 것이다. 아버지의 선택은 딸(신씨)의 운명을 갈라놓았다. 반정성공 후 불과 7일만인 9월9일이었다.
반정세력은 “‘역적의 딸’(신씨)을 왕비로 삼는다면 인심이 불안해지니 내쫓으라”고 막 즉위한 중종을 다그친다. 반정세력의 시퍼런 서슬에 중종은 신씨를 ‘버선발로’ 쫓아내고 만다. 이후 이 신씨 폐위 사건은 이후 233년 동안이나 ‘뜨거운 감자’였다.
특히 <중종실록> 1506년 9월9일자에 기록된 ‘신씨 폐출 기록’이 논란의 초점이었다. 반정세력이 ‘신씨를 왕비로 삼는다면~’이라는 가정법을 쓴 대목이다. 그래서 신씨가 애초에 왕비로 책봉된 적이 없었다는 주장이 훗날까지 제기되었다.
■538명 여론조사의 결과
그러나 <국조보감>과 <선원보략> 등 왕실기록은 달랐다. “신씨는 9월2일 중종 반정 후 중전이 되었고, 9일 쫓겨났다”고 했다. 또 1557년(명종12) 12월7일 승하한 신씨를 위해 쓴 졸기는 “중종이 즉위하자 비(신씨)도 정위(중전 자리)에서 하례를 받았다가 쫓겨났다”(<명종실록>)고 했다.
‘신씨=만 7일간의 왕비’라는 점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신씨를 복위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이어졌지만 쉽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중종에게는 신씨를 내쫓고 얻은 두 부인(장경왕후 윤씨와 문정왕후 윤씨)이 있었다.
만약 신씨가 복위되어 종묘에 모실 경우 중종의 옆 첫번째 자리는 누가 차지하느냐는 현실적인 문제까지 제기되었다. ‘폐비 신씨 복위 운동’은 숙종 대에 이르러 들불처럼 일어났다.
1698년(숙종 24) 9월30일 ‘신씨의 복위’를 주장하는 상소문이 올라왔다. 이때 숙종은 대신·종친·문무백관은 물론 지방 대신 및 유신까지 총 491명의 의견을 수렴했다.
그 결과 찬반 여론이 팽팽했다. 그러나 숙종은 “참으로 난처한 측면이 있다”고 토로하면서 복위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종묘에 복위된 신씨의 신주를 봉안하기가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결단을 내린 것은 영조(1724~1776)였다.
“폐비 신씨가 왕비가 된 적이 없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날 봐라. 내가 임금이 되었을 때 내 부인은 이미 중전이 됐다. 중종이 왕위에 이은 날 신비(단경왕후) 역시 자동으로 중전이 된 것이다.”(<영조실록> 1739년 3월11일)
영조는 “남편이 임금이 되면 부인은 당연히 그 순간부터 중전이 되는데 누가 이의를 다냐”고 매조지했다. 그러나 영조 독단으로 처리하지 않았다. 내외의 의견을 폭넓게 모으라는 지시를 내린다.
급기야 종친 및 문무백관 등이 총출동해서 신씨의 복위를 두고 찬반토론을 벌인다. 지방 관리 및 유생들의 의견도 받았다. 그렇게 토론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이가 538명이었다. 이중 1명을 제외한 537명이 ‘신씨 복위’에 찬성표를 던졌다.(<영조실록>·<승정원일기> 1739년 3월15일)
이후 신씨의 복위 및 종묘 입주 절차는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단경왕후’의 시호를 받은 신씨의 신주는 종묘의 ‘중종실’에 모셨다. 신주의 위치는 중종의 ‘원후’, 즉 첫번째 부인 자리에 놓였다.
■종묘에 떨어진 벼락
문종의 부인이자 단종의 어머니인 현덕왕후 권씨(1418~1441)의 신주도 수난을 겪었다.
현덕왕후(1441년 난산후유증으로 서거)는 남편(문종·재위 1450~1452)이 승하하자 당연히 남편과 함께 그 신주가 종묘에 부묘되었다.(1454년 7월15일) 그러나 아들인 단종이 폐위(1455)되면서 현덕왕후의 사후도 나락으로 떨어진다. 1년 뒤(1456) 일어난 단종 복위 사건에 현덕왕후의 아우인 권자신(?~1456)이 연루됐다. 이 사건으로 권자신은 물론 현덕왕후의 어머니(아기·阿只)까지 처형됐다. 현덕왕후 역시 폐위되었고 그 신주도 종묘에서 철거되었다. 그렇게 폐위된 현덕왕후의 복위 여론은 끈질기게 이어졌다. 그러나 일부 대신들의 반대로 성사되지 못했다.
그러다 1513년(중종8) 2월28일 종묘에 때아닌 벼락이 떨어지자 비상이 걸렸다. “조종의 영혼이 있는 곳에 벼락이 웬말이냐”면서 억울하게 폐위된 현덕왕후의 복위 및 종묘 복귀론이 급물살을 탔다.
마침내 현덕왕후의 복위 및 종묘 부묘가 결정되었다. 현덕왕후는 현릉(문종릉)에 이장되었고, 신주는 종묘 문종실에 봉안됐다.
이렇듯 종묘에는 조선 왕조의 정신이 담겨있다. 지금 종묘 논쟁을 바라보면서 딱 한가지 드는 의문이 있다. 굳이 높이 145m 초고층 건물을 종묘 앞에 세워야 할 필요가 있을까. 대체 누구를 위해, 몇 명의 ‘종묘 뷰’를 위해 그렇게 죽자사자 고집을 피울까. 이해할 수 없다. 이기환 히스토리텔러 lkh0745@naver.com
<참고자료>
김우진, ‘영조의 단경왕후 신씨 복위와 의의-복위 부묘 의례를 중심으로’, <동양고전연구> 90권, 동양고전학회, 2023
문영자, ‘조선시대 추존왕의 추존론 전개와 부묘 과정’, 건국대 석사논문, 2013
신성곤, ‘종묘 제도의 탄생:종묘의 공간과 배치를 중심으로’, <동아시아 문화연구> 57권, 한양대 동아시아문화연구소, 2014
이강근, ‘조선 왕조의 신전 종묘’, <미술사학연구> 216권, 한국미술사학회, 1997
이현진, ‘조선시대 종묘의 부묘 의례와 성격’, <서울학연구> 43권, 서울시립대 서울학연구소, 2011
이혜원, ‘성종 초 덕종의 추존 과정과 그 의미’, 숙명여대 석사논문,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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